한국은행이 지난 11월 말에 발표한 보고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은 그 수준(2021년 기준 OECD 최저, 홍콩 제외 세계 최저)과 지속 기간(2002년부터 1.3 미만 21년 지속)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행 경제 전문가들이 내놓은 보고서라 뭔가 깜짝 놀랄만한 내용과 제안이 들어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사실 보고서엔 누구나 짐작하는 내용과 대책들이 들어있다. 집값과 주거비를 낮추고, 육아휴직 실제 이용 시간을 늘리고, 청년 고용률을 높이고, 도시인구집중이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 낮아지면 0.78인 출산율을 1.6까지 높일 수 있다고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다 공감하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의 특이한 점은 2015년으로 집값을 돌려놓는 걸 가정했다는 점이다. 집값이 지금보다 훨씬 더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집중 인구 완화도 마찬가지다. 도시집중이 완화한다는 건 도시의 집값이 더 내려간다는 걸 의미한다. 그만큼 지금 도시의 집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대표 도시 서울의 집값은 얼마나 비싸길래 한국은행이 저런 보고서까지 낸 걸까? 다른 나라 도시와 집값을 비교하는 지표에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을 나타내는 ‘PIR(Price to Income Ratio) 지수’가 있다.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해당 지역 중간 가격의 주택을 구입하는 데 소득을 쓰지 않고 모았을 때 소요되는 햇수를 뜻한다. 보통 3~5를 적정하게 보는데, 2020년 2분기 서울의 PIR은 무려 12.04배였다. 같은 시기 10배 이상을 나타낸 도시는 캐나다 밴쿠버(11.9배)와 호주 시드니(11배) 두 곳뿐이었고 호주 멜버른은 9.5배, LA는 8.4배, 런던은 8.2배, 뉴욕은 5.4배였다(한겨레신문. 2020. 8. 30. “‘연 소득 대비 집값’ 서울은 12배, 뉴욕·런던보다 월등히 높다.”).

그렇다면 도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집값을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있을까? 땅값으로 비교할 수 있다. 집은 땅과 건물의 합이니 땅값이 비싸면 집값이 비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땅값 비교는 GDP 대비 땅값으로 표시하는데, 비교가 가능한 OECD 국가의 GDP 대비 땅값은 1~4배 사이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020년에 5배를 돌파했다가 2022년에 약간 떨어진 4.9배다.

이렇게 집값과 땅값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더 잘산다는 걸까? 한 나라의 생산물 총액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는 것은 다른 나라보다 부유하다는 뜻이지만, 땅값과 집값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높다는 것은 한 나라가 생산한 전체 소득에서 부동산을 가진 개인과 법인이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가격은 일종의 청구권이다. 부동산값이 1,000원이면 그 나라 총생산에서 1,000원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2,000원으로 오르면 2,000원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의 청구권이 커지면 전체 소득은 고정되어 있으니, 부동산이 없거나 조금 있는 사람의 청구권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것은 부동산값이 비싸지면 가계의 주거비가 올라가고 부동산 없는 기업이 매월 지불해야 하는 임대료가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문제는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발생하는 소득은 노력 소득이 아니라 생산과 무관하게 발생한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정당한 원인에 의한 불평등은 사회 역동성을 높인다. 더 많은 소득을 얻은 사람에 대한 존중 혹은 존경이 있고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창발성을 자극한다. 이에 반해 부당한 원인에 의한 불평등은 사회 갈등과 불만의 원인이 된다. 사회 불안이 커지고 공동체성은 약해진다. 더 많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얻은 자, 부동산으로 대박을 터트린 자를 마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주된 감정은 한편으론 시기심이고 또 다른 한편으론 절망과 탄식일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부당한 불평등―필자의 추산에 따르면 2021년 발생한 부동산 불로소득은 무려 461.6조 원에 달한다.―과 초저출생의 주범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부동산이 나라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은 인구절벽 혹은 초저출생은 부정의(不正義)의 결과라는 점이다. 부정의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구절벽이 현실로 다가오면 ‘평균’ 부동산값은 떨어질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부동산 수요가 준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모든’ 부동산값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제도적 환경이 계속되면 개발이 예상되는 지역이나 도시는 여전히 투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더 심해지며, 지역 간·계층 간 갈등은 더 심각해질 될 것이다. 요컨대 인구가 줄어들면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초저출생과 인구절벽을 불러온 원인, 즉 부정의를 제거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는 정부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지금이 부동산 투기 공화국에서 벗어날 적기라는 판단하고 세제와 금융정책과 주거복지 정책을 입체적으로 투사했을 텐데, 윤 정부는 기준금리가 높음에도 돈을 계속 공급해 부동산 부양에 올인하고 있다. 부동산 부정의의 길을 계속 가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올 상반기엔 40조 원 규모의 특례보금자리론을 풀었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도 출시했다. 이로 인해서 2023년 1월부터 집값 하락과 함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감소하였으나 2023년 5월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얼마 전에는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서 저리의 신생아 특례대출 상품 27조 원도 내놓았다. 물론 시장금리와 정책금리의 차이는 정부 재정으로 메꿔준다. 그리고 급기야는 청년들이 청약통장에 가입해 주택을 분양받으면 주택담보대출을 파격적인 저리에 제공하겠다는 정책도 발표했다. 이렇게 정부가 유동성을 계속 공급해 주니 2023년 11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은 845조 3,000억 원으로 한 달 만에 무려 5조 8,000억 원이나 늘어났다. 여기에다 고가 다주택자들이 부담하는 종합부동산세는 깎아주었지만, 주거복지 예산은 삭감했다. 요컨대 윤석열은 가계부채가 폭발 지경에 이르든 말든 대출을 최대한 늘려서 부동산경기 부양에 몰두하고 있다. 즉, 맨 앞에서 다룬 한국은행 보고서가 제시한 방향과 정반대로 폭주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었다. 국가의 존속이 위태로운 지경으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동산 투기는 최근 현상이 아니라 이 땅에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하나의 체제로 작동해 왔다. 그러므로 체제 전환의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부정의의 핵심을 타격하는 종합적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면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막대한 시세차익과 은행이자 보다 높은 임대 수입의 합인 불로소득이다. 불로소득이 기대되지 않으면 집을 여러 채 보유하지 않는다. 불로소득이 예상되지 않으면 농사에 관심 없는 사람은 농지를 소유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로소득이 건물이 아니라 토지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핵심은 토지 불로소득을 차단하거나 환수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토지에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기가 상당 부분 줄어든다. 더 흥미로운 점은 토지보유세의 우수성을 이념과 무관하게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 이렇게까지 광범위한 동의를 받는 정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토지보유세 강화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부담해야 할 토지 보유자들의 저항이 여간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개혁 정부도 이 조세저항이라는 난관을 극복하지 못했다. 토지보유세가 좋긴 하지만, 토지를 보유하지 않은 계층은 관심이 없고 보유한 계층은, 특히 과다하게 보유한 계층은 강력하게 저항하니 간난신고 끝에 제도화에 성공했더라도 후퇴가 빈번하게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핵심은 보유세 강화에 강력한 지지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강화한 토지보유세 액 모두를 국민 전체에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토지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강력한 지지층 형성이 가능하다. 필자가 저자로 참여한 책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이상북스, 2023)에 나와 있듯이 토지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국민의 90% 이상이 실질적 혜택을 누린다. 토지를 보유하지 않은 40% 세대는 부담은 없고 혜택만 있다.

부동산을 소유한 55%의 세대는 부담보다 혜택이 많다. 이런 까닭에 토지 기본소득은 일단 제도로 도입되면 후퇴가 아니라 전진할 수 있다. 게다가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지역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두 번째는 엄청난 부채를 일으키지 않고도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는 것인데, 가장 좋은 방법은 토지는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이다. 이렇게 하면 30평대 아파트를 3억 원이면 마련할 수 있다. 물론 토지임대료는 적정하게 부담해야 한다. 이런 공공이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면 투기도 차단하면서 쉽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저소득층과 신혼부부와 청년들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도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 시장을 통해서 주거를 해결하기 어려운 계층은 있을 수밖에 없고, 정부는 신혼부부와 청년들이 최소한 주거에서는 평등한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런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면 모든 국민의 주거권은 온전히 실현할 수 있고, 지역화폐와 함께 실행되는 토지 기본소득은 지역과 지방의 회생도 도울 수 있다.

물론 윤석열 정부에게 이런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 개혁적인 유능한 정부가 들어와야 가능하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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