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3대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책임 교육·돌봄’과 ‘대학개혁’도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교육 혁신’에 나서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2월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맞게 교육 내용·방식의 근본적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공교육에서도 과감한 변화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는 토를 달 수 없다. 교육부는 ‘첨단 기술을 적용하여 학생 한 명 한 명의 역량을 최대한 키워줌으로써 한 명도 놓치지 않는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 실현’을 약속했다.

결국 교육부는 ‘첨단 기술’을 정책 실현의 중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민간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빠르게 교육에 적용하고 있으나, 여전히 공교육 현장의 변화는 더딘 상황’이라는 진단에서도 ‘기술’에 거는 기대를 확인할 수 있다.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누구나 자신의 역량에 맞는 교육목표를 자기 주도적으로 성취 가능’하다는 대목에서도 역시 ‘기술’이 중추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부가 말하는 디지털 기술, 첨단 기술은 AI 디지털 교과서로 집약된다. 지난 6월에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보면 2025년 수학, 영어, 정보 과목을 시작으로 2028년까지 전 과목에 도입하겠다는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과연 AI 디지털교과서는 우리 교육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공부에 흥미를 잃은 학생이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멀티미디어,VR·AR을 활용한 체험’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 기술을 잘 활용하면 ‘모든 학생이 자신의 학습 목표, 학습 역량, 학습 속도에 맞는 맞춤 교육을 받을 가능성’도 조금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한다고 해서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것을 넘어, 프로젝트·협력 활동·토론 등을 통해 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만들어 가는 능동적 학습자로 성장’할지는 의문이다. N수생에게 유리한 정시(수능) 40% 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초등의대 준비반’ 사교육이 자리 잡은 현실을 볼 때 초등에서도 쉽지 않아 보인다. 특목·자사고 유지 정책과 더불어 2028 입시 개편안의 여파가 크게 작용하는 중학교에서도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 더 강력하게 작용하지 않겠는가. 입시에서 여전히 중요한 내신과 수능 성적을, 철저한 한 줄 세우기 상대평가 방식으로 산출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고등학교 수업에서 프로젝트·협력 활동·토론이 가능하단 말인가.

교육부가 2028 대입 개편 시안에서 밝힌 것처럼 ‘아날로그 시대의 9등급제, 오지선다형 평가는 사교육 반복 학습을 유발해 창의력·문제해결력 중심의 수업혁신에 역행’한다. 그런데 ‘수업 혁신에 역행’하는 요인들, 정책들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어떻게 ‘모든 학생이 자신의 학습 목표, 학습 역량, 학습 속도에 맞는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떤 첨단 기술이, 어떤 디지털교과서가 한국식 시험공부-성적 경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교육부도 진정한 미래 교육이 디지털교과서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눈치다.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의 부록으로 ‘디지털교육 체제 전환 관련 해외사례’를 소개했는데, 미국의 ‘국가교육기술계획’에 나오는 ‘배움을 위한 평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경쟁을 위한 평가’에서 벗어나야 ‘배움을 위한 평가’로 전환해야 디지털 교육혁신이 비로소 가능하단 사실을 문서에 버젓이 적어놓고 나서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라니.

한국은행의 최근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보고서는 우리나라 출산율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청년층이 느끼는 경쟁압력을 꼽았다. 2006년 2조를시작으로 2022년까지 280조를 쏟아부었지만, 경쟁압력에 무용지물이었다.

학교 현장에서 경쟁압력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정책, 집단의 경쟁을 위한 평가에서 개인의 배움을 위한 평가로 근본적인 전환 없이 미래 교육은 불가능하다. 교육부가 그 어떤 미사 연구를 동원해도 ‘기술’은 그것이 첨단기술이든, 디지털 기술이든 교육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교육부의 디지털 혁신 정책으로 인해 우리 교육 현실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사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경쟁의 수단으로, 입시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 공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외면한 상태에서 디지털 기술은 경쟁 수단을 고도화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사회문제인 양극화, 학력 격차에 디지털 격차까지 더해진다고 생각하니 암울할 따름이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경제정책이지 교육정책이 아니라는 비아냥이 사실무근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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