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 영상을 보다 깜짝 놀랐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암울했던 1981년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수사 주무와 나눈 대화 영상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서울의 봄이 신군부에 의해 짓밟힌 어두운 시대 컴컴한 청주교도소 감옥 안에서도 수십 년 뒤 찾아올 인터넷 혁명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였다.

그의 혜안에 놀라웠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이 IT 강국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이런 혜안을 지닌 국가 리더십의 업적이다. 진행자의 말이 귓가에 울린다. 누구는 80년대에 2023년을 살고 있는데, 누구는 2023년에 80년대를 살고 있다는 그 말이.

사실 그 둘 다 우리로서는 따라잡기 어려운 말이다. 80년대에 40년을 앞서가기도 어렵고, 2023년에 80년대 사고를 갖기도 어렵고, 다만 2023년을 살면서 가까운 미래에 무엇이 펼쳐질지 예측하고 조금만 더 미리미리 준비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서 기후 위기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두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지만, 여전히 준비가 소홀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써본다. 그것은 바람개비 풍차로 불리는 재생에너지, ‘풍력발전’의 미래이다.

석탄 중독 영국이 10년 만에 석탄 중독에서 벗어난 이유

기후 퀴즈로 시작해 본다. 제주도에서도 볼 수 있는 바람개비(풍력발전)의 거대한 날개 한 바퀴가 돌아갈 때 나오는 전기로 휴대전화 몇 개를 동시에 충전시킬 수 있을까?

정답은 300개이다. 한겨레 최우리 기자가 바람의 왕국 스코틀랜드 현장취재에 가서 들은 말이다.

‘차가운 가을비와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휘날리는 스코틀랜드의 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풍력 발전소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발전기 터빈 날개(최대 48m) 돌아가는 ‘쉭쉭’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현지 직원은 (이곳의 215개 풍력 발전기를 통해) “2019년 기준으로는 영국의 모든 전기차를 이곳에서 만든 전력만으로도 가동할 수 있었다”며 “날개가 한 바퀴 돌면 300대의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한겨레, 2021년 12월 1일

 글래스고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화이트리 풍력 발전단지’는 설비용량 539메가와트(㎿)로 원전 1기의 반 정도의 설비용량,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만으로도 글래스고 60만 시민이 생활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바람이 거세고 국토의 2/3가 산과 황무지로 구성된 스코틀랜드는 풍력발전을 통해 오히려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부상했다.

‘스코틀랜드 재생에너지산업 무역 기관인 ‘스코티시 리뉴어블’ 자료를 보면, 특히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전체 전력의 97%가량이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이 중 설치 용량 기준 71%가 육상 풍력이다. 해상 풍력과 수력·태양광 등도 이를 보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에너지 전문가들은 글래스고로 떠나는 기자에게 “풍력발전만 보고 오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 한겨레, 2021년 12월 1일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은 200여 년 전부터 석탄에 심각하게 의존하며 스모그 등 대기오염에 시달렸다. 1990년까지 전체 전력의 72%를 석탄 발전에 의존했다. 그러나 2021년 기준 전체 전력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 제로에 가깝게 석탄 사용을 줄였다.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던 이유는 10년간 급속도로 확장된 풍력발전, 바람개비 농장의 활성화 덕분으로 꼽힌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가 매년 발간하는 에너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영국 전력 중 풍력·태양광 발전 비중은 24.9%로, 2010년(2.6%) 대비 약 10배 늘었다. 바이오 에너지 등 기타 재생에너지도 12.9%로 10년 전(3.2%) 대비 증가했다. 원자력(2010년 16.2→2021년 14.8%)을 포함할 경우 무탄소 발전이 절반을 넘는다. 반면 같은 기간 석탄 발전은 28.1%에서 2.1%로 급감했다. 줄어든 석탄의 자리를 재생에너지가 대체한 것이다.’

- 머니투데이, 2023년 4월1일

 이렇게 10년 만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석탄은 비싸게 재생에너지는 싸게’ 시장의 질서를 만드는 영국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2014년부터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15년간 고정된 가격으로 사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초기 투자비용이 높은 재생에너지 업계의 경쟁력을 높여갔다. 그렇게 초기 시설 투자를 안정적으로 이룬 풍력발전 업계는 이후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발전단가를 낮춰나갔고 최근에는 정부 보조금 없이도 수익을 내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2019년 3차 입찰엔 해상풍력 업체 중 보조금 없이 낙찰된 첫 사례가 등장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보조금 없이 기존 발전원과 경쟁력을 갖는 수준이 된 것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영국의 해상풍력 평균 발전단가(LCOE)는 2010년 평균 0.210달러/kW에서

2021년 0.054/kW로 떨어졌다.’ - 머니투데이, 2023년 4월 1일

 우리나라 해상풍력 인허가 기간68개월... 덴마크는 34개월

여기서 또 한 가지 기후 퀴즈를 풀어보자. 영국을 석탄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준 해상풍력 발전이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섬나라라는 입지적 특성을 잘 활용한 사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도 삼면이 바다이다. 바다는 공유자원으로 계획만 잘 짜면 얼마든지 많은 해상풍력 시설을 세워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복잡한 인허가 과정이다. 해상풍력 선진국 덴마크에서는 바다 위에 풍력 발전시설을 설치하기까지 인허가 과정을 평균 34개월 만에 완료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인허가 과정은 어느 정도일까?

정답은 68개월이다. 덴마크보다 딱 두 배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29가지 법령에 따른 다양한 부처의 인허가를 통과하는데 평균 5년이 넘어가는 6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2022년 9월 기준으로 우리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목표로 천명한 해상풍력 보급 목표의 단 1%만이 달성되었을 뿐이다.

‘국내에서 해상풍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대 10개 부처에서 집행하는 29가지 법률에 관한 인허가를 개별적으로 받아야 한다. 해상풍력사업 추진 순서에 따라 인허가 과정을 다섯 단계로 구분해 2022년 9월까지 발전 사업 허가를 취득한 해상풍력 발전사업의 인허가 현황을 분석하였다. 입지 관련 다양한 협의 중 최소 하나를 완료한 사업은 5%인 1.0GW, 공유수면점·사용 허가를 완료한 사업은 네 개로 약 0.5GW에 불과했다. 2013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약 10년간 착공을 위한 주요 인허가를 모두 완료한 사업의 용량이 전체 발전사업 허가 취득 용량 대비 2%에 불과한 것이다.’

- 기후솔루션 보고서, 2023년 1월 25일

 이처럼 느린 이유는 공유수면인 바다에 해상풍력 시설을 건립하기 위한 적정 입지 선정부터 건립 과정에 대한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채 사업주가 적정 입지를 선정하고 건립 과정에서 어민들이나 주민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이어지며 관련 부처들의 보수적인 태도가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는 데에 있다. 반면 덴마크의 경우 여러 인허가 과정의 시간을 단축하는 원스톱 행정 간소화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적정 입지를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미리 선정한 뒤 정부가 선정한 입지에 최적의 사업자를 입찰방식으로 정하는 ‘정부 주도’ 사업수행으로 공공성도 유지하고 인허가 과정도 간소화시키는 점이 눈에 띈다.

‘덴마크에서 해상풍력이 자리 잡은 4가지 핵심 요인으로 강력한 정치적 의지, ‘원스톱 샵(One-Stop Shop, 원스톱 통합지원시스템)’, 투명한 절차, 풍력단지와 그리드(전력망) 연계의 보장을 꼽았다. 그는 “발전 부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이뤄지고, 부지에 대한 모든 개발이 에너지청을 통해 계획되며, 입찰에 참여하는 모든 기관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리드를 적절한 시점에 연결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해 준다”고 설명했다.’

- 머니투데이, 2023년 11월 24일

 덴마크는 8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뒤 석유 없이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에 힘을 쏟아 현재 전력의 약 50%를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축산분뇨 바이오가스 등 바이오매스 발전을 합하면 67%를 신재생에너지로 해결하고 있다.

덴마크로 재생에너지 공부를 하러 간 유학생 신준수 씨는 코펜하겐 공항에 내릴 때 바다 위에 하얗게 설치된 해상풍력 바람개비들이 인상적이었다고 <오늘의 기후> 기후 톡파원 사연에서 말해줬다. 코펜하겐 공항뿐이 아니다. 영국 히드로 공항 근처 바닷가에도 대만의 타이베이 공항 근처 바닷가에도 바람개비들이 오로지 바람이 힘만으로 화석연료 배출 없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갈수록 대세가 되는 풍력발전 재생에너지의 시대, 우리 정부는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현재 우리 국회에서는 ‘해상풍력 특별법’을 비롯한 관련 법안들이 올라가 있다. 2023년에 2050년 탄소중립의 미래까지 그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2030년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막을 새로운 7년 후의 미래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에너지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담

은 제도 정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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