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5주년, 민에스더 이사를 만나다

지난 2019년 1월 29일 설립된 평화나무는 거짓 선동 및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세상을 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종교 분야에서 교인의 맹목적 신뢰를 바탕삼아 차별과 혐오를 유발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일부 개신교회와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미디어와 각종 이익단체의 행동을 집중적으로 견제, 감시해 왔다.

이 모든 활동 뒤에는 많은 사람의 노고가 숨어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평화나무 상임이사로 근무하는 민에스더 이사다. 벙커1교회 장로이자 평화나무 상임이사인 민에스더 이사는 교회개혁을 넘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지금도 모니터 앞에서 숫자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평화나무 5주년을 맞이해 민에스더 이사를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74년생 여성이며 현재 평화나무 상임이사로 근무 중인 민에스더 이사라고 한다.

평화나무 이사가 되게 된 계기는?

김용민 이사장과는 2012년 벙커1교회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교회 예배 때 반주만 하고 교회 일에는 깊이 관여하지도 않고, 교회 운영위원회에 참여해 본 적도 없다. 그렇게 교회를 오며 가며 눈인사만 하던 사이였다.

그런데, 2018년 10월 26일 왼쪽 다리 골절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김용민 이사장이 위로 하는 척하며 전화가 왔다. 위로는 몇 마디 하고, 사단법인을 만드는데, 거기에 이사가 되어달라고 하였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이사냐, 다른 훌륭하신 분들이 계시는 데 더 알아보시라 하였으나 김 이사장이 강권하셔서 ‘알겠다, 이름만 빌려 드리겠다’ 하여 이사로 등재까지 하게 되었다.

평화나무 설립 5년이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21대 총선 전, 공명선거감시단 모니터링 활동을 하며 현 교회의 현실과 우리 사회의 오류를 깊이 느끼며 평화나무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평화나무 직원들의 헌신에 늘 감동한다. 특히 사무처는 적은 인원들이 1당 100 그 이상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모두 회원들의 회비를 소중히 생각하고 1원이라도 낭비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에 나도 늘 각성한다.

기독교회복센터의 김디모데 소장님의 욕심에 늘 감사한다. 그 욕심으로 탄생한 기획력에 감탄하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교회 회복 운동에 대해 늘 배우고 있다.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계셨던 걸로 아는데, 사회 참여적 신앙인으로 바뀐 계기가 있다면?

2011년 회사 동료가 팟캐스트 ‘나는꼼수다’를 소개해 주었다. 그때 팟캐스트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정치 시사에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나꼼수 출연자 3인(김용민은 당시에 거의 말이 없던 시절)의 말이 너무 시끄러워서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익숙한 교회 이야기를 하더라. 그것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이슈였다. 집중해서 들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회사 IT팀의 팀장님이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이라는 게 생각나서 사실확인을 했더니, 맞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교회에 계속 다니세요?” 물었더니, “그건 그들의 문제죠, 우리같이 아래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얘기에요” 하더라. 더 어이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계기로 나꼼수를 계속 들으며 사회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2년 김용민 이사장이 총선에 실패하고 벙커1교회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3회부터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계속 이끌리어 오게 된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렇게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니 저절로 몇 개의 모임들이 생겨났고, 그중 나는 ‘보탬’이라는 모임에 가입하였다. 이유는 여성들만 있었고, 인원이 많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보탬이 되자’는 슬로건이 맘에 들었다.

보탬 활동에 대해 논의하는 중에 당시 시청역 앞 대한문에서 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자분들이 생각이 나서 거기에 가보자고 제안하고 누구 1명 반대 없이 그리고 갔다. 그 이후로 농성장을 정리할 때까지 보탬은 연대하였고, 그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나는 그 대한문에서 그때까지 내가 모르고 있던 많은 것을 배웠다. 학교에서 배우던 인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인권’ 말이다. 부당해고를 당해 시위를 하면 빨갱이로 몰려야 하는 현실, 회계 조작과 기술 유출이 되어도 제대로 밝힐 수 없는 우리나라의 한심한 자본 현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회사에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는 현실에 항거하면 위협받는 존재들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들임을 알게 되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죄를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도 기독교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완벽히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인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한문에서 만난 여러 사람과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신앙적 신념을 돌아보게 되었다. 거기에 평화나무 유튜브 프로그램 중 ‘수요 사경회’를 3년 정도 하면서 나의 신앙적 가치관에 혼란이 더 가중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지금도 고민 중이다.

벙커1교회 장로인데, 여성 장로로서 여성에 대해 홀대하는 한국교회 현실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우선, 내가 우리교회에서 장로 피택이 되었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가 “여자가 무슨 장로야”라고 하셨다.신 권사님(어머니)은 평생을 소천하실 때까지 보수 교인으로 사셨으니 당연한 언사이다. 그러면서도 좋아하셨다.

한국교회 내 여성들은 대접받지 못한다. 교회 청소, 식사 준비, 뒤처리까지 모든 힘들고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하면서 “천국에서 보상받을 거다. 하늘에 상이 쌓일 거다” 등의 이야기로 퉁 치려 한다. 교회 봉사를 하는 것은 주님과 공동체를 위함인 것은 맞다. 그 또한 기쁨이고 보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을 온전히 여성들의 몫으로 규정하고 당연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통합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그 교회에 젊은 여성 목사님이 계셨는데, 성찬식을 위해 성 가운을 입고 지나가시는 목사님 뒤통수에 “여자 목사가 무슨 성찬식이야?” 이런 말을 하는 어르신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교단에서 인정한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그분들의 마인드를 보면 교회 내의 여성 교우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러니, 교회에 성범죄가 일어나도 여성들을 탓하는 것 아니겠는가.

민에스더 이사는 ‘시민언론 더탐사’ 전 대표이자 현재 ‘뉴탐사’에서 일하는 최모 씨로부터 임신 중절 종용과 몰카 촬영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영숙 씨(가명)를 돕기도 했다. 영숙 씨는 지난 2022년 11월 최 씨에게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고 시민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성관계를 갖게 됐고, 임신까지 하게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최 씨는 영숙 씨에게 임신 중절을 권유, 그 비용도 전달했다는 게 영숙 씨의 설명이다.

최근 ‘유싸’ 관련해 피해자를 케어하시기도 하셨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많이 놀랐다. 진보 매체의 한 대표자의 행위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피해자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피해의 증빙을 모두 요구했다. 피해 여성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준비했다. 증빙자료를 확인한 후 외면할 수 없었다. 피해 여성은 너무 겁이 많아 법적인 액션을 취할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러저러한 모습과 유형의 약자들이 많이 있다. 이 여성도 그중에 한 부류이다. 그런데, 그 대표자는 이 여성을 유린했다고 본다.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고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대표자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 없다. 하지만, 그 대단한 매체의 대표자의 이런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평화나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현재 나는 상임이사로서 행정업무와 회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평화나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내가 논할 바는 아닌 것 같다. 단, 내가 원하는 평화나무는 지금보다 더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지금보다 더 공격적인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화나무 후원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내 친구가 평화나무에서 일한다고 하니, “그럼 큰 교회에서 엄청 좋아하고, 후원도 많겠다.” 하더라. 나는 친구에게 정 반대라고 했다. 큰 교회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잘못한 목사들을 고소하는 일들을 하다 보니 싫어한다. 이렇게 설명하니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라.

이렇게 일반인들은 이해되지 않은 일들을 하는 평화나무이다. 김용민 이사장은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지 않게 하려고 본인은 1원 한 푼 받지 않으면서 외부 알바로 평화나무 재정을 채워주고 계신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늘 고민이었다. 그런데,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나의 고민이 불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어느 단체는 한 달에 몇억 원씩 들어온다 해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직원들을 위해 애쓰는 김 이사장이 있는 동안 우리의 활동을 어여삐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기로 했다. 후원비를 소중히 여기는 직원들을 보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기로 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 애쓰는 우리가 있는 한 평화나무는 존속할 것임을 믿으며, 그 뒤에 우리의 후원자들도 계심을 늘 생각하고 감사함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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