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살인미수 사건 뉴스가 전해진 그 순간, 많은 이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재명 대표가 겪어온 숱한 고난의 순간이 생각났을 것이고, 누군가는 원내 1당 대표가 무방비 상태로 살해 시도에 노출됐다는 분노에 휩싸였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의 정치 혐오와 갈등이 결국 끔찍한 형태로 현실에서 구현됐다는 걱정이 스쳤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보수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잡아 조리돌림하던 검찰 권력도, 검찰 권력의 손가락만 쫓아다니며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냈던 국민의힘 공천 희망자들도, 검찰 권력 앞에 모여 앉아 던져주는 피의사실을 날름날름 받아먹던 보수 언론도 공포에 휩싸였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보다 강력한 경호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에서 느낀 공포는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혐오와 증오의 칼날이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일차원적 공포다. 지금 보수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는 진정한 공포는, 아마 보수 세력 궤멸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박근혜 데자뷔

2006년 제4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유세차에 오르던 중 커터 칼에 의한 습격을 당했다. 현직 야당 대표에 대한 피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선거를 앞두고 표심이 요동쳤다.

‘대전은요’ 발언은 물론(당시 선거 실무를 책임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024년, 당시 발언은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이 아니라, 참모들이 준비한 발언이었다고 회고했다. 반면 유정복 당시 당 대표 비서실장은 박근혜 당시 대표가 한 발언이 맞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은 병상 위의 박근혜 대표 사진을 공개하며 자당 대표 피습 사건을 적극 선거에 활용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주장했지만, 언론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박근혜 대표를 향했다.

언론은 박근혜 대표의 병원 이송, 수술, 실밥 제거 등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박근혜 대표가 환한 미소로 의료진을 맞았다”는 소식도 지상파 방송으로 전해졌다. 퇴원한 박근혜 대표가 대전을 향한 것을 두고 ‘철의 행군’, ‘애착을 보인 지역에 대한 독한 유세’로 평가했다. 황인선 서울경제 정치부장은 박근혜 대표의 미소가 “일품”이라며 “그의 환한 웃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그 미소가 사라질 것 같아 걱정됐다”고도 말했다. 그때도 이 사건을 ‘자작극’이라고 주장한 단체가 있었지만, 모든 언론이 이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결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표심은 한나라당에 쏠렸다. 선거를 불과 열흘 남기고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에 두 배 이상의 격차를 벌렸다. 박근혜 대표는 당시 차기 대선 주자 1위에 올랐다. 있을 수 없는 정치테러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동정심, 2006년 지방선거는 이 ‘동정심’을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이 지방선거 결과 열린우리당은 전라북도지사, 단 한 자리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만 이겼고. 이듬해 대선까지 참패해 궤멸했다.

그런데,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제1야당에 대한 있을 수 없는 살해 시도가 벌어졌다. 범인은 흉기를 준비했고, 이재명 대표의 동선을 미리 답사해 범행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당원으로 가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재명 대표는 목을 찔렸고 단 1mm만 빗겨났어도 사망에 이를 뻔했다.

이 사건을 보고 이재명 대표의 과거 고난을 떠올린 사람이든, 범행에 분노한 사람이든, 정치 혐오와 갈등에 우려한 사람이든 공통으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다. 동정심은 답이 없다. 박근혜 대표의 ‘대전은요’ 발언, 치료 장면 공개, 퇴원 후 대전으로 향한 그의 행보. 모두 동정심을 극대화하려는 영민한 선거 전략이고. 정치인이든, 정치부 기자든 이것이 선거 전략임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동정심에는 어떻게 답이 없었다.

공포에 맞닥뜨린 순간

선거를 불과 석 달여 앞두고. 보수 언론은 이재명 동정표를 막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곧바로 각 편집국 회의실에서는 서울대 나온 정장 입은 아저씨들이 열심히 주판알을 튕겼을 것이다. 그 결과 정치적 혐오감을 바탕으로 한 확신범의 야당 대표 살해 시도에 대한 충격과 분노는 대중이 모여 있는 포털 메인화면에서 24시간여 만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재명 대표에 대한 동정표 차단’이라는 보수진영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작전은 ‘일사분란’하게 진행 중이다. 사건 직후 국가기관은 이재명 대표의 상태를 ‘1cm 열상’으로 축소해 배포했고. 언론은 직후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살인미수 사건을 ‘제1야당 대표의 헬기 특혜’ 혹은 ‘제1야당 대표의 지역의료 무시’로 바꿔 보도했다. 의대 정원 확대를 앞두고 일부 의사단체들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맹비난을 쏟아내며 ‘기삿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갑자기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에서 나온 민주당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반복 보도되면서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로 포장됐다. ‘부산 의료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같은 정치적 메시지는 편집됐고, ‘가족들이 더 큰 병원으로 가길 원했다’는 감정적인 메시지가 정치화됐다. 박근혜 대표 피습 당시 한나라당의 대응이 완벽했을 리 없다. 기자들과 만난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발언에도 구멍이 있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놀라운 사건을 맞닥트린 인간의 심리가 그렇다. 박근혜의 당시와 이재명의 지금에 차이가 있다면, 보수 기득권은 박근혜 동정론을 부추겨야 했다는 것. 그리고 이재명 동정론은 막아야 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해자가 이재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재명을 공격한 살인미수범의 정치 혐오가 자신들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초등학교만 나온 소년공, 교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한 건방진 태도, 보편적 복지 확대와 기본소득 같은 불온한 사상. 보수 언론에 있어 이재명은 기득권 근처에도 접근해서는 안 되는 자였고, 두 번 다시 같은 자가 나타날 수 없도록 효수해야 할 대상인 것 같았다. 검찰의 피의사실은 무차별적으로 받아썼고. 반론권은 보장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되는 정도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수 년간 밟고 또 밟았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체급이 점점 커지더니 이런 위기 속에서도 살아 돌아왔다. 이건 동정표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는 공포다.성공할 수 없다

다시 공포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노력은 가상하나 보수 언론의 이런 식의 프레임 전환은 결국 성공할 수 없다. 이 사건을 아무리 ‘부산 무시’, ‘지역의료 무시’라고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대중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이재명 대표의 쓰러진 모습을 봤다. 그리고 이 사건 피해자 이재명 대표를 안타까워한다. 이런 프레임 전환은 보수 언론이 윤석열 지지자들에게 쥐여주는 또 하나의 칼이 될 수 있지만, 무시무시한 정치테러를 목격한 민주당 지지자들과 중도층은 이런 혐오 기사에 진절머리를 친다.

2014년 4월 16일. 자식 잃은 세월호 부모들은 울고 쓰러지고, 소리 지르며 10년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박근혜 정부 내내 걸었고, 세 걸음 걷고 엎드려 절했다. 누군가의 인간적 비극을 자신들의 정치적 공포로 받아들였던 조선일보는 유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당적을 뒤졌고, 발언을 왜곡해 비틀었다. 공영방송의 카메라는 유족들의 눈물이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의 한 방울 눈물을 클로즈업해 동정의 대상을 유족이 아닌 대통령으로 돌리려 했다.

이따위 저질 정치 공작은 박근혜를 지지하는 자들의 칼이 됐다. 인터넷에서 혐오나 받아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던 보수 꿈나무들은 단식하는 유족들 옆에서 치킨이나 뜯어내며 시시덕거렸다. 그들이 그러고 있는 사이, 참사 현장을 목격한 수많은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다. 세월호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당시 새누리당은 선전했지만, 세월호에 민심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고 대통령 박근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이 됐다.

공포에 젖은 권투선수의 난타는 통하지 않는다. 권투 선수가 주먹을 아무렇게나 휘둘러 댈 때는 경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지고 있는 게임을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페이스 조절을 할 때다. 그러나 한국 보수는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며, 윤석열 대통령은 더더욱 그런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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