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13억 9,000만 원, 최은순 9억여 원’

검찰이 지난 2022년 12월 30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이 피고인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1심 재판에서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에 마지막으로 제출한 의견서에 담긴 내용이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 의견서에서 검찰은 지난 2009년 4월 1일~2011년 12월 30일 ‘한국거래소 이상 거래 심리분석 결과’를 제시했는데, 그 의견서에는 김건희 씨와 모친 최은순 씨가 총 23억 원가량의 이익을 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뉴스타파는 “김건희 여사가 주식 거래로, 그것도 주가를 조작해 큰돈을 벌었다면 윤 대통령 역시 불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게 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와 결혼한 날짜는 2012년 3월 11일로, 검찰이 기준으로 삼은 수익 산정 기간 종료 시점(2011년 12월)에서 불과 3개월가량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2022년 3월 9일 이후 여러 언론 보도에서 윤 대통령이 김건희 씨와 2년 가까이 연애 끝에 결혼했다고 보도했는데, 2012년 3월 11일로부터 역순으로 2년을 계산해 보면, 김건희 씨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했던 1차 시기(2009~2011년 12월) 1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기 윤 대통령과 함께 보냈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씨가 오히려 도이치모터스에 돈을 넣었다가 4,000만 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해 왔다. 2021년 12월 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는 “조금 비쌀 때 사서 쌀 때 매각한 게 많아서 나중에 수천만 원의 손해를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은 윤 대통령의 당시 발언과 정반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의 발언으로 현재 재판을 받는 상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15일 국민의힘 3선 중진들과 오찬 간담회를 진행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의견서에 대해 “옛날에 문재인 정권 당시 의견서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그러면 그때 (수사를) 왜 안 했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견서를 검찰이 제출한 것은 2022년 12월 30일이고,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 5월 9일부터 시작됐다. 한 위원장은 윤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이었다. 다시 말해 검찰이 제출한 의견서는 ‘윤석열 정부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때 제출된 문서다.

‘김건희 방탄’ 비판에도 사상 첫 가족 특검 거부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된 ‘김건희 특검법’과 ‘50억 클럽 특검법’ 이른바 쌍 특검법에 대해서 지난 5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1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쌍특검 법안이 정부에 이송된 지 딱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비서실장은 또 “12년 전, (윤 대통령과) 결혼하기도 전 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한 사건”이라며 “검경 등에서 특검에 수백 명의 인력이 차출될 경우 법 집행기관들의 정상적인 운영에도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고 했다. 이 비서실장이 언급한 김 여사가 수사받았던 시기 검찰총장은 윤 대통령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을 거치며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윤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씨를 수사했던 검찰이 2년이 넘도록 수사해 놓고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면 이 또한 특검의 수사 대상이다.

‘김건희 특검법’의 제안 이유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는 주식 거래를 위한 통장 대여뿐만 아니라 시세조종 의심 거래를 한 정황이 확인됐다. 범죄행위와 의혹들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대통령 배우자라는 이유로 주가조작 및 금융시장 질서 훼손 의혹에 대한 진상을 밝히지 않고 시간 끌기 수사, 봐주기 수사를 반복하면서 위법 행위에 눈 감고 있어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기재돼 있다.

다시 말해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한 위원장이 말하는 것처럼 문 정권에서 2년 넘도록 수사를 해놓고 마무리를 하지 않고 있다면 이 또한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김건희 씨 모녀가 23억 원가량의 이익을 본 것도 드러난 상태다. 특검의 수사 대상에는 김건희 씨나 모친 최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기타 상장회사 주식 등의 특혜 매입 관련 의혹,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 과정에서 범죄혐의자로 밝혀진 관련자들의 불법행위, 도이치모터스 의혹과 관련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사상 처음으로 ‘가족 비리 의혹’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 됐다. 특검의 수사 결과 불구속이나 집행유예, 사면 등의 가벼운 처벌로 끝난 경우도 있었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씨 또한 최소 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는 특검을 수용했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해충돌 소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는 명분이 없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거짓말로 대통령이 됐고 그 대통령의 권한으로 특검 수사를 막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이해충돌 소지는 없는지 권한쟁의 심판을 내고 헌재에서 다퉈보는 것도 검토 중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회를 견제하기 위한 행정부 수반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삼권분립으로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행정부에 속해있는 검찰과 경찰이 윤 대통령의 정적인 국회 제1야당 대표를 끊임없이 수사하고, 주변부를 털고 있는 것이 정상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쩌날리즘의 독자들과 같은 생각이므로 따로 말은 하지 않겠다.

거부권 행사는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써,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이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입법을 야당이 강행할 경우 행사할 수 있지만 기존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이나 노란봉투법 같은 정책적 법안이 아닌, 대통령 배우자의 범죄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안이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해충돌 위반 소지가 있다.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이해충돌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행 이해충돌방지법은 부인이나 가족 등 사적 이해관계자가 관련된 사안의 경우 스스로 직무 수행을 회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은 윤 대통령이 관련된 사안이므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스스로 회피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 전후로 현재까지 국민들을 상대로 별다른 설명이나 사과도 없고, 야당을 상대로도 설득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 엉뚱하게도 김건희 특검을 피하고자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도입 등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제2부속실에 현재 김건희 씨를 보좌하는 인물들이 그대로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서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또 대통령의 친인척 등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에 대한 감찰을 담당하는 특별감찰관의 경우에도 실제 임명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김건희 씨는 지난달 15일 네덜란드 순방에서 귀국한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다. ‘디올 백’과 ‘김건희 특검법’ 정국에서 관심을 피하기 위함으로 추측된다. 김건희 씨는 과거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허위 경력, 논문 표절 등 의혹이 퍼지자, 2021년 12월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고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그 뒤 선거 때까지 두문불출했다. 말이나 행동, 패션이 입방아에 오르는 걸 한동안 피할 수 있었다.

2월로 예상되는 쌍 특검법 재의결 시점까지 시간은 조금 남아있다. 대선 정국부터 논란이 돼 왔던 ‘김건희 리스크’이기 때문에, 국민의힘 공천 탈락자들을 중심으로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특히 김건희 씨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 윤 대통령은 현재까지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본인의 잘못에 대해서도 별다른 사과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김건희 씨가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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