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7일은 대한민국 언론사(史)에 오래 회자될 날인 것 같다. 이날 여권이 추천한 네 명의 방송통신심의위원들은 MBC의 후쿠시마 오염수 보도가 객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며 법정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날 여권이 추천한 두 명의 방송통신위원은 준공영 방송인 YTN을 민영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날 공영방송 KBS는 윤석열 대통령과 앵커 박장범의 대담을 편성, 방송했다.

하루 사이 동시에 등장한 세 가지 사건은 윤석열 정부 언론 정책, 그 실체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정책은 이렇게 파괴적이고, 강압적이며, 무모하고 심지어 촌스럽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정책은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적의 숨통을 끊으려 한다. 이런 행위를 고작 ‘언론 탄압’이나 ‘언론 옥죄기’, ‘비판 언론 길들이기’ 따위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언론 학살’, 정확히는 ‘저널리즘 학살’이다.

‘언론 장악’이나, ‘언론 탄압’이니 하는 말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벌였던 수준에서 붙일 수 있는 말이다. 그때 정권은 방송사에 사장을 내리꽂고, 외부 출연자를 잘라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자사 언론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지방으로 발령 내거나, 샌드위치를 만들라고 보내거나 스케이트장 청소를 시켰다.

그렇게 장악한 공영방송에서 그들이 한 짓은 고작 대통령의 쉰 목소리를 라디오로 내보내거나, 9시 뉴스에 보수의 근육이 빵빵하다거나, 비가 오면 소시지 빵을 먹는다느니 따위를 내보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언론인들이 느끼는 공포의 감정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에게 가했던 엠부시(기습적 밀착 취재)조차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이 정부 인사들에게는 나오지 않는다.

기자들은 이들의 언론 정책이 ‘방송 장악’ 수준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사실상 사법권을 틀어쥐고 있는 이들의 두려움 없이 내뿜는 무모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고소에 고발에, 압수수색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농담처럼 떠들어댔던 것들이 현실이 됐음을 자각했다.

집요한 괴롭힘

굳이 장악하지 않아도, 오랜 시간 언론을 뜻대로 이용해 왔던 대통령과 이 정부 인사들은 비판 언론을 거추장스러워한다. 이런 언론을 장악해 봐야 시끄럽고, 정권이 레임덕이라도 오면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목표는 장악이 아니라 내다 치워버리는 것인 듯하다.

그래서 비판 언론은 집요하게 괴롭힌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4년 2월 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MBC 보도에 대한 심의는, 이런 괴롭힘의 전형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류희림과 황성욱, 이정옥과 문재완은 후쿠시마 오염수 2차 방류를 예고한 MBC 보도의 앵커 자료화면에 ‘죽은 물고기’가 있던 것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2차 방류 사진이 아닌데, 2차 방류 예고 뉴스를 보도하면서 썼고, 뉴스 본문에 물고기가 죽었다는 설명이 없음에도 보인 화면에는 물고기가 죽어 있었다는 이유다. 한 마디로 후쿠시마 오염수는 안전한데, 물고기가 죽은 화면을 보여준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보도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해당화면은 1차 오염수 방류 후 외신에 찍힌 사진, 그러니까 후쿠시마와 상관없는 사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희림 일당은 막무가내다.

YTN에 있던 류희림, KBS에 있던 이정옥, 매일경제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문재완 등이 보도 프로세스를 몰랐을까? 2차 방류 전에는 당연히 2차 방류 사진이 없고, 그래서 1차 방류 사진을 썼다는 걸 몰랐을까? 아니다. 이들은 그냥 MBC를 집요하게 괴롭히기 위해, MBC를 법정 제재하기 위해 죽은 물고기나 손에 잡아끌고 들어왔을 뿐이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MBC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 중인 장성철 소장이 보수진영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법정 제재를 추진했다. 선관위에서 선거방송심의위원은 신장식 변호사에 “싸가지 없다”며, 저널리즘과 아무 관계 없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교수, 변호사, 언론인씩이나 되는 자들이 누가 누구 편을 안 들었다는 이유로 방송사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몰랐을까? 아니다. 이건 MBC를 괴롭혀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 목적의식은 이렇게 일사불란하다. 모종의 ‘지침’이 없었다면 개인의 양심 선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일들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방심위는 류희림 위원장 취임 이후 채 넉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모두 27건의 법정 제재가 의결됐다. 월평균 7.04건꼴이며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법정 제재가 가해진 적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던 보도, 심기를 가장 많이 건드린 MBC에 그 제재가 집중됐다. 대부분의 제재는 공정성과 객관성 같은, 정치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진 제재였다.

그들의 일사불란하고 자의적인 괴롭힘의 결과로 나온 법정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 때 주요 감점 요인이 된다. 그리고 MBC는 당장 재허가를, 그러니까 생계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신장식 변호사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잔혹성

2024년 2월7일, 검사 출신의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이렇게 단 두 사람이 1993년 개국한 30년 전통의 준공영 방송 YTN을 유진기업에 팔아 치웠다.

유진기업은 검찰에 뇌물을 준 유씨 일가가 오너로 있고, 최근 소속 투자 증권이 자전거래를 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아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회장 일가가 계열사를 이용해 사익을 챙겼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언론사 오너는커녕, 개인 회사의 오너로서도 자격 여부가 의심되는 곳에 뉴스 전문 채널, 심지어 준공영 방송인 YTN을 팔아넘겼다.

이 과정은 거침이 없다. 주식을 매각할 생각이 없다던 두 곳의 공기업이 한꺼번에 주식을 팔아치웠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문제가 있다던 서류에 대한 추가 심사도 벌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5인 합의제 기구에서 단 두 명, 그중의 한 명은 유진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음에도 매각은 추진됐다.

이런 행위는 오직 ‘보복’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박성중은 YTN 매각 이유를 “YTN이 좌편향 이념 방송을 하며 민주당 하수인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물론 YTN은 그런 적이 없다. 이들의 논리는 자기편을 들지 않으면 편향이고, 자기를 비판하면 민주당 하수인이다.

이런 잔혹한 수법은 TBS에도 가해졌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오랜 시간 청취율 1위를 수성했던 TBS는 하루아침에 예산이 끊어졌고 재허가조차 불투명하다. 아예 방송국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TBS는 자사 라디오의 부흥을 이끌었던 김어준과 신장식을 영구 출연 금지 시키고 무릎을 꿇고 싹싹 빌지만, 이들은 민주당의 하수인 노릇을 한 TBS를 살릴 생각이 없다.

극우 유튜브로

이런 그들에게 공정방송을 하겠다며, 민주당 편향 방송을 하겠다며 싹싹 비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그들이 원하는 답변은 앞으로 ‘극우 유튜브 수준’의 방송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 수십 명을 초청했다. 2024년 2월 7일 KBS가 그 다짐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미 수많은 언론이 친정부, 친검찰 보도를 충실하게 해내고 있지만, 극우 유튜브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특히 공영언론은 지배구조 상 그따위 보도를 결코 해낼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걸 KBS가 해냈다. 대통령을 둘러싼 수많은 비판, 영부인과 그 가족에 대한 수많은 의혹, 그리고 의혹을 넘어선 명품백 사태. 대통령에게 파고들어야 할 수많은 질문을, 앵커 박장범은 ‘그 작은 파우치’로 넘겨버렸다. 대통령에게 외교 성과가 많았다고 칭찬하며 순방비 논란을 묻어버렸다. 대통령의 의자에 앉아 무게감을 느낀다는 황당한 소리나 해댔다.

그날 앵커 박장범이 참 보잘것없어 보였던 것은 비단 대통령의 커다란 덩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앵커 박장범의 태도와 질문은 시종일관 비굴했고 대통령을 만난 성공한 극우 유튜버 같은 모습이었다. 2024년 2월 7일은 윤석열 정부 언론 정책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난 날이다.

“언론들아. 살고 싶나? 극우 유튜버가 되어라. 대통령과 영부인이 등장할 때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노래를 틀어라. 그러면 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은 민주당의 하수인일 뿐이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처벌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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