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의 진실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허재현 리포엑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허재현 리포엑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다음은 OO일보 편집국 상상 회의 풍경입니다.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질병관리본부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데스크;그래? 아직까지 방문을 안했었어?
-기자;네. 그렇다네요.
-데스크;아깝네. 아직까지 방문도 안했다고 비판했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쳤구만.
-기자;그러면 그냥 방문했다고 비판하면 어떨까요? 
-데스크;그렇지. 업무방해됐을 거잖아.
-기자;다시 살펴보니 어렵겠네요. 업무보고를 일부러 못하게 했대요. 순수한 격려방문이라고.
-데스크;그래도 업무시간을 빼앗았을거 아냐?
-기자;저녁 때 밥차 준비해서 같이 밥만 먹고헤어졌다는데요?
-데스크;도시락 줬다는거지? 부실한 걸로?
-기자;갈비찜이었다네요.
-데스크;그래도 뭐 비판할 거좀 찾아봐. 대통령이 자화자찬같은 거 안했어?
-기자;질병관리본부가 칭찬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만 언급했네요.
-데스크;대통령이 마스크는 했어?
-기자;마스크 안썼네요.
-데스크;그래. 그걸로 비판하자.
-기자;근데 정은경 본부장도 안했는데요.
-데스크;그래? 정은경 본부장은 인기가 너무 좋아. 괜히 건드렸다가 우리만 역풍맞잖아.
-기자;마스크도 어렵겠는데요.
-데스크;정은경 본부장이 혹시 대통령 눈 안마주치거나 곤란해하는 표정 없었어?
-기자;믿고 격려해주셔서 고맙다고만.
-데스크;마스크 5부제는 잘 되고 있어?
-기자;첫날이라 좀 혼선은 있을 겁니다.
-데스크;엉망진창 수준은 아니고?
-기자;가끔 약국에 사러갔다가 허탕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데스크;그럼 오늘은 그거로 가자고. 
-기자;그래도 며칠 뒤면 정상화될텐데.
-데스크;그러니까 정상화 되기 전에 후다닥 써버려야지.
-기자;그래도 해외에선 다들 방역 시스템 칭찬하는데
-데스크;괜찮아. 언론은 권력감시가 사명이니까.

>>다음날 기사 제목;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곳곳 혼선...시민 분통>


제가 작성해본 콩트입니다. 웃기신가요? 저는 정말 진지합니다만. 요즘 제가 이런 의심까지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언론들이 작정하고 문재인 정부의 방역에 대해 비판적 보도만 쏟아내기 때문인듯 보여서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 기사'만 쓰는 것 같습니다. 반면, 국내에서 취재중인 외신 기자들의 보도 내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분명 같은 나라에서 취재중인데 이렇게나 다른 이유는 대체 뭘까요.

지난 4일 중앙일보 전수진 기자는 <한국인이어서 미안합니다> 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한국인인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이 자신의 자리를 손수 소독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이어서 미안했던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라고 썼습니다. 아마 문재인 정부가 방역에 무능해서 세계 망신이라 지적하고 싶었던 칼럼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칠 수 있습니다. 전수진 기자가 과거 메르스 질병 확산 때 쓴 칼럼을 누리꾼들은 용케 찾아내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기자는 과거 메르스 국면 때 '메르스에게서 배운게 많다'고 썼습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카페 등은 청결에 신경쓰게 되었고 사람들은 손을 더 잘 쓰게 되었다는 것을 관찰하며,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만들어내는' 사회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왜 이렇게 태도가 다를까요. 문재인 정부 때의 전염병과 박근혜 정부 때의 전염병에 대단한 차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너 좌파야 우파야' 묻고, '중국에서 날아온 것이니 좌파라고 치자. 너도 문재인 정부와 한 편이지?'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 의심이 너무 과한가요? 저도 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트집잡기 식의 보도를 보다보면, 자꾸 의심이 가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 사태 중간 평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기자회견 직후 '정부가 자화자찬 한다'는 비판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누리꾼과 전문가들의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중앙일보> 출신 의사 기자인 홍혜걸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떻게 지금 시점에 이런 황당한 발언이 나올 수 있을까? 정신승리하는 분들이 많다"고 비판했습니다.

아직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박 장관이 다소 부적절한 말을 했다는 생각에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박 장관이 자화자찬 한 발언은 실제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박 장관은 "한국은 기존 방역관리체계의 한계를 넘어 개방성과 참여에 입각한 새로운 방역관리 모델을 만들고 있다. 현재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한다면 우리나라의 대응이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이자 세계적인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장관의 말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자화자찬일까요. 그는 분명 과거형이 아니라 가정형 문장으로 '우리가 더 열심히 잘 한다면 한국이 다른 나라의 방역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습니다. 만약 과거형 문장으로 '한국은 방역의 모범 국가가 되었다'라고 평가했다면 "성급한 자화자찬"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 뿐입니다. 이게 어떻게 자화자찬일 수 있나요. 이미 해외 여러 언론들이 한국의 방역 노력을 극찬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어 '타화타찬'인 측면도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동아일보의 3월10일자 보도 <"아픈 아이가 마스크 줄 어떻게 오랜 시간 서나" 부모들 눈물> 이란 기사를 봅시다. 정부가 9일부터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하자, <동아일보>는 제도시행 이튿날부터 부작용을 찾아서 보도합니다. 현행 마스크5부제는 본인이나 미성년자의 보호자가 신분증을 지참해 약국을 방문해 마스크를 사도록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소아암 환자 부모들을 인터뷰 해, 아이들 곁에 항상 머물러야 하는 부모의 경우 '마스크 사각지대'에 있다며 "정부가 건강취약계층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보도를 보면서, '어쩌라고?'라는 혼잣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소아암 환자는 부모 외에 다른 보호자가 없습니까? 소아암 환자의 언니누나 혹은 이모삼촌은 약국에 절대로 못갑니까?  코로나 확산으로 다들 허리띠 매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편해도 많은 것을 인내하며 버티고 있는데, 언론이 너무 행정의 공백을 억지로 찾아서 보도하고 있다는 의심은 저만 하는 것인가요.

비슷한 보도들은 많습니다. <'짜증 허탕 분통...마스크 없는 마스크 5부제 첫날'>(국민일보), <"이게 전부예요? 공적 마스크 공듭 첫날 시민들 헛걸음에 분통>(뉴스1), <마스크 없는 '마스크 5부제'? 또 속았다 시민들 '분통'> (조선일보) 등의 보도들을 보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기자들은 집집마다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며 마스크를 나눠주기 전까지는 비판보도를 멈추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때는 또 "집집마다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않을까요?

지난달 말부터 각종 언론에서는 '코로나 공포에 도심 한산' 과 같은 제목을 단 도심 르포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공포를 느끼고 있지 않고, 그저 정부의 외출 자제 호소 방침에 따르고 있을 뿐인데 마치 제가 공포에 떨고 있는 시민처럼 다뤄지는 게 불쾌했습니다. 공동체 의식과 높은 시민의식으로 이 위기를 차분히 극복하려고 노력중인 시민들을 '공포에 떨고 있는 시민'들로 묘사하는 것은 객관이 아닙니다. '공포의 일반화'는 조중동의 허상이자 바람일뿐입니다.

 같은 시기 해외 언론들은 "한국 시민들이 놀라울 정도로 공포에 떨고 있지 않다"며 현지 르포 기사를 전하고 있어 대비됩니다. 미국 에이비씨(ABC) 방송사의 이언 패널 기자가 대구에서 직접 쓴 기사의 일부입니다. 그는 지난달 24일 <한국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진원지에서>(Inside the epicenter of the Korean novel coronavirus outbreak')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아마 대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바이러스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은지 보여주는 모델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당황,공포,폭동,수백명의 감염 환자를 두고 두려워하는 군중이 없다. 대신 냉정한 고요와 침묵이 있다. 많은 회사와 가게, 학교들이 문을 닫고 시민들은 집에 있다. 대구는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2020년의 인류에게 새롭고 평범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구의 한 의사는 "대구의 병원은 대구 시민들을 위한 노아의 방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위기의 극복을 확신했다. (중략)" 
 
"It is also, perhaps, a model for how other cities and towns in the free world might try to deal with the virus.  There is no panic here; no rioting, no fearful mobs opposing the housing and care of hundreds of infected patients in their city. Instead there is a stoic calm and quiet. Most businesses and stores are shuttered. All schools are closed. Most people stay at home. Daegu may be the model for life for many of us in 2020 where living with COVID-19 is the new normal.
The director, Dr. Cho Chi-Heum, says no hospital could be prepared for an outbreak like this. He is worried for his staff and needs more of everything; doctors, nurses, medicine and beds. He is also determined to overcome, “I think this hospital is the Noah’s Arc to save Daegu citizens”. He has one last message to the world before he turns back to the twenty-four hour task of saving lives here. “This is not a very bad infection” he insists."

한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해외 언론의 이러한 보도가 알려지자 이제는 시민들이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자조섞인 농담까지 합니다. 40여년전 광주에서 벌어진 일의 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해외 언론의 보도와 다큐 등을 애써 찾아보았던 그때의 국민처럼 지금 우리는 다시 해외 언론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보도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사회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씁쓸합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일부 깨어있는 시민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대중들이 스스로의 필터링을 통해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와이티엔(YTN)의 의뢰를 받아 조사해 발표한 3월1주차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7.9%에 달했습니다. 되레 그전주보다 1.8%포인트 오른 수치라고 합니다. 대중들은 판단하고 있지 않을까요. '문재인 정부가 다 잘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깎아 내릴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메르스 때 국민은 '정부의 부재'를 체험했다면, 지금은 '정부의 노력'을 체험중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재학생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중인 학생인 것입니다. 가능성이 없어 퇴출당한 퇴학생과는 다른 것이지요. 허재현 리포엑트 기자(전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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