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싸움, 교회 내 성범죄에 맞서다

성교육상담센터 '숨' 정혜민 대표

2017년 9월, 한 대학교의 강사로 재직하던 때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섰는데 유독 눈에 띄는 한 학생이 있었다. 예쁜 얼굴만큼이나 멋지고 건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인기도 많고 똑 부러지는 학생이었다.

첫 만남 뒤, 이 학생이 상담할 일이 있다며 교수실로 찾아왔고 우리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됐다. 동시에 그루밍 사건을 둘러싼 지루한 싸움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 일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나를 찾아온 그 학생도 처음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교회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당사자(김다정과 피해자들)간에 대화 내용이 담긴 4시간이 넘는 분량의 음성 파일을 들으며 이 일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성 파일에는 피해자 세 명이 울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따져묻고, 김다정은 그때마다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말들을 늘어놓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해자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몇 분, 몇 초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노트에 적으면서 4시간이 넘는 파일을 꼼꼼하게 다 들었다. 김다정이 본인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울부짖으며 말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잠시 녹음파일 재생을 멈추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그가 피해자들에게 했던 짓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하게 느껴졌다. 김다정은 더이상 목사가 아니었다. 추악한 가해자일 뿐이었다. 
  
이후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고 2018년 11월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디서부터 나눠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는 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기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아이러니할 것이다. 그동안 그런 일들을 겪고도,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인데도 어떻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맞다.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붙잡았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더 꽉 붙들어 주셨다.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그분은 우리에게 새 숨을 부어주셨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목사님, 이제 숨이 쉬어져요"

언젠가 피해자들과 함께 모여 치킨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열심히 닭 다리를 뜯던 나는, 이 친구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그만 울음이 복받쳐 올랐고 애꿎은 콜라만 벌컥벌컥 마시면서 애써 태연한 척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많은 회유와 협박, 배신과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울고 웃으며 씩씩하게 이겨냈다. 

밤마다, 새벽마다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 인천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목사인 내 마음도 이렇게 무너지는데 지금 이 친구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나님께서 부디 저 친구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길, 다시 회복시켜주시길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루밍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었으나, 여전히 우리는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다. 

기자회견 이후로 시간이 흐르면서 ‘이단’, ‘종북’, ‘좌파’ 목사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미리 잡혀있던 강의와 설교 일정들이 갑자기 취소되는 일들도 생겨났다. 목사가 왜 세상 언론에서 교회 욕을 하느냐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모르는 자라면서 말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를 저주하고 욕하는 그분들 앞에서 조용히 뒤돌아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 검찰에서 김다정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영장실질심사 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무죄를 가리는 진짜 재판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원점이 되어 버린 것 같은 허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해자 측을 옹호하는 교인들은 당연한 결과라며 기세등등했고 피해자들은 또 가해자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좌절도 잠시. 우리는 다시 씩씩하게 걸어 나가기로 마음을 모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우리는 이번에도 이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나를 아끼고 걱정하는 많은 분들로부터 이제 쉬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할 만큼 했다고, 이제 그만 교회 현장으로 돌아와 목회나 하라는 분들도 있다. 특히 여자 목사가 성에 관련된 일을 하면 앞으로 사역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하면 교회에서 안 불러 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내가 받은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주님의 진짜 복음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고 믿는 하나님은 교회에도 계시지만 
  교회 밖, 내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 땅 가운데서도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으리란 걸 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결과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각오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걸어가겠다.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며 용기를 내준 친구들의 손을 붙잡고, 우리를 끝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이 어렵고 좁은 길을 한 번 끝까지 걸어 가보고 싶다.    

성교육상담센터 '숨' 정혜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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