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위반은 추상적, '간첩'은 수사학적, 비유적 표현" 재판부 전 씨 1심 무죄 판결
"재판부 판결 이해할 수 없어, 스스로를 갉아먹는 판결" 시민사회 무죄 판결 맹비난

지난 30일 무죄 판결을 받은 전광훈 씨(출처=연합뉴스)
지난 30일 무죄 판결을 받은 전광훈 씨(출처=연합뉴스)

[평화나무 신비롬 기자] 

“왜 제가 문재인을 끌어내려고 하느냐? 문재인은 간첩입니다. 간첩. 문재인 간첩 입증의 영상을 지금부터 틀도록 하겠습니다. 문재인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간첩의 왕인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간첩의 본체인 것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사상가 신영복은 누구인가? 간첩의 왕 신영복인데, 내가 가장 존경한다는 것은 문재인도 간첩이라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6·25 3대 전범 김원봉을 국군창시자의 영웅이라고 말했는데, 이거 간첩 아닙니까?”

“문재인 야 이놈아 내 말을 잘 들어. 이제 너를 내가 끌고 반드시 나와서 박근혜 자리에다가 차버릴 거야”

“돌아오는 4월 15일 날은 기독자유당이 폭풍타를 칠 것입니다. 기독인들의 967만 표 중에 절반인 500만 찍어버리면 기독자유당이 제3정당이 되고 원내교섭단체를 능가할 수 있어요. 이 방송을 보는 전국의 1200만 기독교인들이여, 그리고 30만 목회자들이여, 25만 장로님들이여, 잘 들으십시오. 기독자유당이 앞장서서 반드시 예수한국 복음통일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비례대표 찍을 때 기독자유당을 찍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한국당도 사실 기독당이었으니까 잘 협력해 그 쪽은 지역구에서 다 당선되기를 바라고 우리는 비례대표로 당선되면 둘이 합쳐지면 반드시 역사는 일어납니다”

지난 2월 24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전광훈 씨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전 씨는 이미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기독자유당을 찍어라’, ‘자유우파 정당에 투표하라’는 등의 선거운동을 해 왔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간첩이라고 주장하며, 대한민국을 북한에 갖다 바치려 한다 등의 발언으로 명예훼손까지 저질렀다.

이에 검찰은 전 씨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2년, 명예훼손으로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선거권이 없어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의 청중을 상대로 계속적인 사전선거운동을 한 사안으로 범죄 혐의가 소명된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전 씨의 수감 생활은 길지 않았다. 전 씨는 구속된 지 56일 만에 허선아 부장판사의 판결로 보석처리 돼 풀려났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이 정하는 ‘필요적 보석’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고, 위법한 일체의 집회나 시위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며 조건부 보석을 허가했다.

이후 전 씨는 광화문 집회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하는 등 보석 조건을 위반해 9월 7일 다시금 재수감 됐다. 140일 만의 일이다.

 

1심 재판부, 표현의 자유와 증거 불충분 이유로 무죄 선고

감옥을 드나들던 전 씨는 지난 30일 허선아 부장판사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전 씨가 각 발언을 한 사실은 모두 인정되나 피고인이 지지한 자유우파 정당은 그 의미가 추상적이고 모호해 실제 정당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고, 당시 관련한 정당의 후보 등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냈다.

명예훼손 역시 “‘간첩’이라는 용어가 반드시 그 본래적 의미로만 사용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수사학적, 비유적 표현으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국가 내지 반사회적 세력’과 같은 의미에서부터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확장, 변용되어 사용되고 있다”며 “그 발언의 문맥이나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단지 ‘간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 적시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전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출처=연합뉴스)
'표현의 자유'와 '증거 불충분'으로 전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출처=연합뉴스)

 

사법부의 판결, 이해 안 돼, 스스로의 신뢰 갉아 먹는 판결

사법부의 무죄 판결에 많은 이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30일 브리핑에서 전광훈 씨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유감을 밝혔다. 민주당은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국민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판결”이라며 “(전광훈 씨는) 비상식을 넘어 비이성의 수준이며, 종교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극우 정치인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전 목사의 극우적 언동에 면죄부를 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하려는 극우세력에 길을 열어주는 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나누리 대표 방인성 목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방 목사는 “종교적 탄압이라는 빌미를 줄까 봐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판단”이라며 이번 재판 결과에 납득하지 못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그동안 막말과 정치적 행위를 쏟아낸 전광훈 씨에 대해 한국교회는 더 큰 윤리적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며, 만일 이번 판결로 좋아하거나 기뻐한다면 그건 정말 한국 교회의 수치”라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디딤의 박지훈 변호사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간첩'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서는 틀림없는 '명예훼손'이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판례에 따라서 ‘종북’이라는 표현도 명예훼손이 된 적이 있다”며 “구체적으로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 인격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데, ‘간첩’이라고 하면 떨어뜨리는 게 맞다. 만일 다 그런 식으로 판결하면 다 무죄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2심에서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박성철 목사 역시 이번 판결에 대해 “사법부가 스스로의 신뢰를 갉아 먹는 판결”이라며 혹평했다.

박 목사는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데, 표현의 자유라는 게 타인을 해치면서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하진 않는다. 이번 판사분께서 너무 본인의 개인적인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을 판결에 너무 많이 투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를 빨갱이로, 간첩으로 몬다는 건 다 이념적인 공작이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간첩단 사건을 꾸리던 사회에서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말했는데도 판결을 받지 않는 건 한국 사회를 너무 긍정적으로 보거나 본인 스스로 그 이념에 동의하는 것이다”라며 “너무 비상식적인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비슷한 일을 막기 위해 “판사들이 자신의 판결에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평화나무는 전광훈 씨에 대해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전 씨 변호인단은 지난 11월 9일 공판과정에서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이 집요한 공작을 통해 고발한 것”이라며 “김용민 청탁에 의한 수사”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7일에도 “선관위와 김용민 이사장이 전 목사를 구속시키기 위해 공조한 것이고 고발을 가장한 청탁수사”라고 말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이에 평화나무는 전 씨를 상대로 명예훼손과 모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또 민사소송 외에 형법상 명예훼손죄, 정보통신 법상 모욕죄로 형사 고소 또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평화나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