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 앞에서 열린 '쪽방 주민이 주인되는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촉구 및 쪽방 주민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쪽방촌 주민들이 '개발 계획 수립에 쪽방 주민의 의견을 반영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21.2.18 (사진=연합뉴스)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지난 2월 발표된 ‘서울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주도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부동산시장 정상화특위(송적준 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역 쪽방촌(동자동) 재정비사업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쪽방촌에서 삶을 영위해가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국민의힘에겐 중요치 않았던 것일까. 이날 간담회는 소유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2013년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와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김정호 씨(62세)는 “얼굴색도 좋고 좋은 옷을 입은 분들은 따뜻한 건물에서 회의하고, 없는 우리는 밖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나라 실정”이라며, “어제 국민의힘과 건물주들의 간담회 소식을 듣고 주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월 5일 정부가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한 이후 동자동 건물마다 붉은 깃발과 현수막이 나부낀다.

8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공공주택지구사업 계획에 반발하는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가 설치한 공공주택 토지 강제수용 결사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1.3.8 (사진=연합뉴스)

 

쪽방, 이곳에 사람이 산다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용답동 쉼터에서 지내다 2013년경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왔다. 보증금 50만원에 월 25만원을 내고 쪽방촌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얼마 전 월 3만원을 인상한 가격이다. 

밥상 하나를 놓기도 비좁은 쪽방은 겨울이면 공동 화장실 정화조가 터지기도 하고 여름이면 곰팡이가 피어날 정도로 주거 환경은 두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양변기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화장실도 주민들에겐 큰 숙제였다. 

그래도 쪽방촌은 이들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가난이 마음마저 쪼그라들게 만들지는 못했다. 

김 이사장과 함께 2011년 설립된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주민은 389명.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는 쪽방촌 주민 중 다수가 은행 거래를 할 수 없는 신용불량자라는 점을 고려해 조합원이 그달 여유만큼의 출자금을 납입하면, 총 자기 출자금 중 70%만 소액 대출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목적으로 생겨났다. 탈퇴 전까지 최소 30%는 꾸준히 저축할 수 있는 셈이다. 

김 이사장도 배움이 짧고 심장이 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만큼 건강도 좋지 않지만, 가방끈이 길고 건강한 어떤 누구보다도 ‘공존’의 의미를 잘 아는 듯했다. 

그는 “나도 뭔가 주민들을 위해 큰일을 하기보다는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에서 이사장으로서 봉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주민들이 필요한 요구를 많이 한다. 방이 작다 보니까 밥통 놓을 선반을 내달라. 이불 얹는 거치대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해주면서 주민들과 친해졌고 주민들도 내가 아파서 밥을 못 먹으면 죽도 사다주고 정을 주고받는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큰 욕심이 없다. 그저 몸을 눕힐 방 한 칸, 이웃의 필요에 손을 내밀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거듭 말했다. 몇 해 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구입한 선풍기 한 대에 저녁마다 웃음 지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쪽방이라도 내가 살 수 있는 공간에서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예요. 한 몇 년 전에 선풍기를 새로 샀어요. 선풍기는 1년에 한 번씩 쪽방에서 나눠주기도 하고 기업에서 후원도 들어와서 나눠주는데 내가 산 선풍기를 리모컨을 눌러서 돌릴 때, 매일 저녁 기분이 좋아서 웃었습니다” 

동자동에 들어와 주민들을 도우면서 남을 돕는 일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김정호 이사장. 그는 “동자동에 들어와 처음으로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땅도 보고 하늘도 보고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서울시 동자동 쪽방촌. 쓰러질 듯 허름한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1평 남짓 공간에서도 온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은 1천여명이다. 

 

"평소 우리게에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김 이사장은 “최근 건물주들이 몇 번 전화도 왔다”며 “갑자기 ‘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느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니까 황당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건물주들은 평소에 우리한테 눈길도 안 주고 안면도 없는 사람들”이었다며 "수도가 고장 나도 스스로 고쳐 쓰고 그래 살지 건물주한테 말해서 고쳐달라 하고 그런 거 없다"라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감내하며 살아오면서 지난 2월 ‘서울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발표가 나오면서 좀 더 안정된 주거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져봤지만, 오세훈 시장 당선과 함께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공포로 다가오는 중이다. 

김 이사장은 “약자들뿐 아니라, 가진 자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해주기를 바란다”며, “시장 하나 바뀌었다고 계획이 전면 수정되면 그게 나라겠나”라고 말했다. 

 

"재산권 중요하다"는 국민의힘

이번 간담회에는 국민의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별위원회의 송석준 위원장 외에도 윤창현 의원, 태영호 의원, 이종인 위원, 홍세욱 변호사와 지역구 국회의원인 권영세 의원, 오천진 용산구의원이 참석했다. 

권영세 의원은 이날 “기본 원칙과 기본 권리 보장에 소홀해서는 안된다”며,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되, 소유주의 재산권도 지켜져야 하는 만큼 동자동 재정비사업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윤창현 의원은 “공공이란 이름으로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쪽방촌 주민과 주민대책위 모두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쪽방촌 주민과 건물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강조했으나, 이날 쪽방촌 주민들은 간담회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밖에서 울분을 토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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