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박종찬 기자] 8일 3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함박도 북한군 주둔 해명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글을 올린 청원인은 “2017년부터 인천시 강화군에 있는 헌법상 우리나라 영토 '함박도'가 북한군에 의해 불법으로 점령당하고 그들은 군사기지를 설치하여 우리 대한민국 군대를 위협해왔다”면서 “국토교통부는 우리나라 영토가 맞다고 하면서 정작 문재인정부는 북한 땅이라고 하는 이상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원인은 “2년이 넘는 시간동안 국방부장관이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냐, 혹 알고도 숨긴 것이냐” 반문하며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인지 북한의 영토인지 확실하게 선을 그어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함박도’ 둘러싼 안보 불안 누가 키웠나?

이른바 ‘함박도 논란’은 한 매체의 단독 보도한 기사에서 비롯됐다. <주간조선>은 6월 24일 '[단독대한민국 주소지에 북한군 주둔서해 NLL ‘함박도’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해양수산부와 국토교통부의 자료에는 함박도가 대한민국 영토로 기재되어 있으나, 국방부가 함박도를 북한 영토라고 한 답변을 대조하며 “정부의 주소 등록이 잘못되었거나, 대한민국 땅을 북한이 장기간 실효 지배해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보도 내용을 보수 유튜버들이 받아 방송하면서 SNS상에서는 ‘한국 땅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 ‘‘우리 땅 함박도’를 문재인 정부가 북한군에 내줬다’는 등의 메시지가 안보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퍼져나갔다.

출처=해양수산부 무인도서 정보조회 시스템 ‘함박도’ 검색 결과 일부, 2019.09.03. 현재.

논란이 확산하자 국방부는 7월 11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의 요청에 따라 ‘서해 NLL 일대 북한군 주둔 도서 현황’을 제출했다.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함박도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에 위치한 ‘북한 영토’라고 되어 있다.

출처=국방부가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실에 제출한 ‘서해 NLL 일대 북한군 주둔 도서 현황’ 일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8월 5일 국방위원회에서 “국토부 자료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간조선과 TV조선은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문제 제기의 방향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해양수산부·국토교통부 자료와 국방부 입장이 다른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점, 함박도가 북한 영토라 하더라도 인근 주민이 느끼는 안보 불안에 국방부가 답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TV조선 <뉴스9>은 8월 30일 [단독] 서해 '함박도'에 북한군 포착…구멍 난 안보'에서 “함박도는 군사적 요충지로 그 곳에서 방사포를 쏘면 인천공항은 물론 강화 김포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방송하기도 했다.

 

주간조선은 9월 2일 '[단독북한 땅이라는 함박도 국방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관리해 왔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방부가 함박도를 북한 영토라고 했는데 정작 함박도가 군사시설보호구역에 포함돼 있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또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당시 서도면 일대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함박도가 어떻게 포함된 것인지 그 배경은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의혹을 더해갔다.

국방부 최현수 대변인은  9월 2일 일일 정례 브리핑에서 “함박도는 서해 북방한계선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서가 분명하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최 대변인은 정부 부처 간 함박도의 소유를 다르게 규정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후 7월부터 관계 부처들이 협의를 통해 행정 오류 수정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최 대변인은 ‘썰물 때 말도에서 함박도를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주민의 증언이 있었는데, 함박도에 북한 군사 시설이 설치되고 있다는 공지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의에는 “항상 관측을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도 확고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주민 여러분들에게는 일일이 그런 사안에 대해서 말씀드리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최 대변인은 또 “(함박도 내 북한 군사 시설은) 감시소 수준으로 알고 있고, 다른 화기라든가 이런 부분은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장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지켜보고 대응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은 꺼지지 않았다. TV조선 <뉴스9>은 국방부의 정례브리핑이 있은 후에도  '[따져보니] '우리땅함박도에 북한 군사시설'  보도를 통해 “북한이 해안포를 설치했다면 우리나라 관문인 인천공항은 물론 강화도와 김포, 영종도까지도 위협 가능”하며 “언제든지 포를 설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따졌다.

 

문재인 정부가 우리 땅 함박도 북한에 내줬다?

 

‘함박도’는 서해 연평 우도와 말도에서 각각 북쪽과 서쪽으로 8km쯤 떨어진 섬이다. 강화군 서도면 어민들은 오래 전 이곳 갯벌에서 조개잡이 어업을 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어로가 금지된 무인도이다.

 

 

U.S. Joint Chiefs of Staff, Korean Armistice Agreement Volume 2, Maps, National Archives Catalog, 1953.
 

미국 국립기록물보관소에 소장된 미 합동참모본부가 1953년 제작한 <한국정전협정> 제2권 첨부 지도 제3도를 살펴보면, 함박도는 NLL 도계선 북쪽에 위치한다. NLL은 정전협정 당시부터 변경된 적이 없다.

출처= U.S. Joint Chiefs of Staff, Korean Armistice Agreement Volume 2, Maps, National Archives Catalog, 1953.

지도 하단에 기록된 설명에서도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제외한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기타 모든 섬들을 북한과 중공의 통제 아래 둔다고 나와 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가 함박도를 북한에 내줬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출처=U.S. Joint Chiefs of Staff, Korean Armistice Agreement Volume 2, Maps, National Archives Catalog, 1953.

과거 자료를 좀 더 살펴보자. 1997년 2월 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시 김동진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함박도”라고 발언했다고 전하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지 9일 뒤에 발표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주요내용 보도자료에서도 당시 정두언 최고위원이 “북한의 함박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간조선도 2010년 12월 6일  '썰물 땐 과 갯벌로 연결 해병들 무장한 채 취침'기사에서 “우도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의 섬은 함박도”라고 표현했다.

오마이뉴스는 2016년 7월 26일 "서해5도에 있는 우도를 아십니까" 기사에서 “우도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 지역은 함박도”라고 썼고, 동아일보는 2016년 10월 21일 '야간경계 투입 앞둔 군 장병들 홍대클럽에 온 것 같다'에서 “이 섬(우도)은 직선거리 10km 이내에 함박도 등 북한 섬 4개가 몰려 있다”고 적었다.

연합뉴스가 9월 2일 보도한  ''북한 땅서해 함박도행정구역상 1978년 강화군에 등록' 내용을 보면, 박정희 정권 당시 내무부는 1977년 각 시·도에 미등록 도서에 대한 지적등록을 마무리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

 

당시 강화군은 함박도를 포함 몇 개의 섬을 미등록 도서로 파악해 대한지적공사에 측량을 의뢰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이미 항공사진 측량 결과를 보유해 별도의 측량이 불필요하다고 회신했다고 한다.

 

경기도의 지침 재전달에 강화군은 1978년 12월 30일 함박도를 지적공부에 등록했다. 이후로 함박도의 소유권은 1986년에 산림청으로 넘어갔고, 1995년 인천이 광역시로 승격되며 강화군을 통합함에 따라 함박도의 행정 관할 구역이 경기도 강화군에서 인천광역시 강화군으로 옮겨졌다. 국토부는 매년 공시지가를 발표할 때 함박도를 포함하기도 했다. 네이버·다음·구글의 인터넷 지도 서비스도 함박도를 도계선 아래에 표기했다.

출처=「미등록비정위치도서조서」, 1978. (성남 나라기록원,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인터넷 서비스)
출처=「미등록비정위치도서조서」, 1978. (성남 나라기록원,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인터넷 서비스)

 

 

인천광역시가 2004년 12월 행정간행물로 발간한 『인천광역시 도서(島嶼) 현황』에는 강화군 말도리 산97을 주소로 한 함박도가 산림청 소유이며, “민간인이 접근불가한 DMZ내에 위치, 현재 군부대 주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강욱, 『인천광역시 도서(島嶼) 현황』, 99쪽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행정 구역 표기가 잘못됐는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숨겨왔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닌 셈이다.

국방부의 정례 브리핑에서 정리한 대로, 함박도는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북한 영토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V조선을 비롯한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함박도와 관련한 안보 불안을 계속 퍼뜨리는 중이다. 국방부가 하태경 의원실에 관련 자료를 제출한 이후에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7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멀쩡한 대한민국 땅에 북한군이 주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TV조선은 8월 30일 함박도 논란을 집중적으로 다룬 <탐사보도 세븐>을 방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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