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왜곡 조작” vs “언론탄압·방송장악” 여당과 언론단체 격돌
“입만 열면 거짓말, ‘대통령, 미국 안 갔다’도 나올 판”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전가에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연 현업언론단체(출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전가에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연 현업언론단체(출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언론단체 간 갈등의 골이 계속해서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인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했던 발언을 보도한 언론사를 지목해 “대통령을 겁박하고 여당을 탄압하려는 것”이라며 언론에 책임을 전가하자, 언론계 종사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

이에 해당 방송을 내보냈던 MBC를 비롯한 여러 언론단체는 성명을 내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27일에는 방송기자 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등 6개 현업언론 단체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 앞에 겸손할 줄 알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며 “언론을 문제의 화근으로 좌표 찍고 무분별한 탄압과 장악의 역사를 재연한다면 윤석열 정권의 앞길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윤 대통령 발언 두고 말 뒤집는 대통령실

사건의 발단은 22일 MBC가 윤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하면서부터다. 윤 대통령은 영상 속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 팔려서 어떡하냐”는 말을 했고, 해당 발언은 외교 참사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해당 발언에 대해 “미 의회를 향한 게 아니라 우리 국회에 한 이야기”라며, 바이든도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발언을 정리하면 “(우리나라)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내가) X 팔려서 어떡하냐”는 것. 윤 수석은 “순방 외교는 국익을 위해서 상대국과 총칼 없는 전쟁을 치르는 곳이나 한 발 더 내딛기도 전에 짜깁기와 왜곡으로 발목을 꺾는다”며 언론이 의도적으로 발언을 왜곡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다 지난 26일에는 이마저도 번복하며 “비속어가 야당을 지목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애초에 ‘이 XX’ 발언을 하지 않았기에 사과할 이유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역시 ‘이 XX’가 아니라 ‘이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대통령이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의도된 왜곡으로 동맹 훼손해” 윤 대통령, 언론에 책임 전가해

이들의 만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야당과 좌파 언론이 조작선동을 했다며 책임을 언론에 전가했다. 권성동 의원은 25일 자신의 SNS에 “야당과 좌파 언론은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을 제2의 광우병 조작선동의 기회로 이용하고자 했다”며 “MBC는 ‘국회에서’, ‘바이든은 X 팔려서’와 같은 자막을 달아 뉴스에 내보냈다. 자막이라는 시각적 효과를 통해 음성을 특정한 메시지로 들리도록 인지적 유도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에서 MBC가 보여준 행태는 신속한 보도가 아니라 ‘신속한 조작’이었다”며 “오늘날 MBC 뉴스는 정치투쟁 삐라 수준”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전 의원도 “대통령께서 국회라고 언급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임이 분명한데, 이를 느닷없이 불분명한 뒷부분을 ‘바이든’이라고 해석하며 미 의회와 미국 대통령을 비하한 것이라고 호도했다”며 “MBC는 의도된 왜곡, 조작에 따른 국익 훼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26일 출근길 기자회견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써 이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방 후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하는 윤석열 대통령(출처=연합뉴스)
순방 후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하는 윤석열 대통령(출처=연합뉴스)

“본인 잘못을 언론에 전가하는 건 군사독재 시절에도 못 들어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책임 전가 태도에 전국언론노조 윤창현 위원장은 27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에 공화국이 만들어진 이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이런 식의 사고를 치고, 그 책임을 언론에 완전히 전가하는 예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며 “해당 보도를 140여 개의 언론사가 했는데, 이 언론들이 모두 작당해 동맹을 훼손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윤 위원장은 “대통령이 부적절한 시간과 부적절한 장소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에 대해 깨끗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하면 될 일을 왜 정쟁의 한복판에 집어 던져 특정 언론사를 표적으로 만드냐”며 “언론탄압과 방송장악의 구실로 만들겠다는 뻔한 수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 영상을 확인하고 대통령실에서 ‘보도 안 하면 안 되느냐’고 말하다 15시간 만에 말이 바뀌어 ‘한국 야당을 향한 것이다’, ‘욕설도 안 했다’ 홍보수석이 했던 발언을 그다음 날 대통령실이 뒤집는, 꼬리의 꼬리를 무는 거짓말 향연이 이어지고 있다”며 “조금 더 가면 대통령이 미국에 간 적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상황”이라고 비꼬았다.

윤 위원장은 “언론과 국민에게 진솔하고 솔직하게 사과하라”며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던 사람이 그 자유를 노골적으로 유린하겠다는 입장을 앞세우면서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과 집권 여당이 이 사태를 정상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계속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고 언론탄압과 방송장악의 구실로 삼으려 한다면 언론노조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 맞서 싸울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권력의 입맛대로 언론을 통제하려 했던 모든 권력은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윤석열 정부가 굳이 그길로 가겠다면 얼마든지 맞서 싸워드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 대통령의 책임전가를 강하게 비판하는 전국언론노조 윤창현 위원장
윤 대통령의 책임전가를 강하게 비판하는 전국언론노조 윤창현 위원장

방송기자 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등 6개 현업언론 언론단체 역시 ‘대통령답게, 언론답게’라는 성명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실이 미국 방문 과정에서 벌어진 욕설과 비속어 논란을 수습하기는커녕 진실게임과 책임 공방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알다시피 말을 뒤집고 논란을 키운 것은 대통령실과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순방에 동행한 영상 기자들이 발언 내용조차 확인하지 못한 때에 이뤄진 대통령실의 비보도 요청, 욕설은 미 의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 그중 제1야당을 지칭한 것이라는 15시간 만의 해명, 그러다가 미 대통령을 언급한 사실이 없고 심지어는 욕설과 비속어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며 “발언의 진위를 더욱 미궁 속으로 빠뜨린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실”이라고 꼬집었다.

또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특정 방송사가 특정 정당과 담함해 영상을 사전에 유출하고 자극적 자막을 내보냈다며 무리한 공격을 펼치고 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무런 문제제기도 못 하면서 특정 방송사만 반복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익을 해치는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럭비공처럼 튀어나오는 대통령의 거친 언사이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아니다”라며 “계속해서 언론 탁하며 재갈을 물리려 든다면 우리도 더 이상 참아낼 재간이 없다. 물가와 환율, 금리폭등 속에 도탄에 빠진 민생을 뒷전에 내팽개친 채 한가한 말장난으로 잘못을 덮으려는 권력의 처신은 더 큰 화를 자초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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