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검색 전광훈 씨의 학력기재란에는 대한신학교 신학과 학사과정을 거쳐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출처=네이버)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전광훈 씨(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201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장에 출마할 당시 총회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신학대학원 목회연구(2년) 과정뿐 아니라 안양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신학교 졸업증명서 역시 위조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신학교는 1948년 개교 이래로 당산동에 위치한 적이 없으나, 전 씨가 제출한 대한신학교 졸업증명서 주소지는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4가로 되어 있다. 

이와 관련 전 씨 측은 5일 뉴시스를 통해 "전 목사는 안양대 전신인 대한신학교에 1978년에 입학해 4학년이 되던 해 학교가 부도가 나자 당시 당산동 소재 신학교(김세창 학장)에서 졸업해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반론을 냈다. 

그러면서 "이후 대신 교단에서 '인재를 놓칠 수 없다'며 6개월 편목과정을 이수해 목사 자격을 취득해 달라는 권면을 받고, 과정을 이수한 뒤 대신 교단에서 (다시) 목사 자격을 취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전 씨가 편목과정을 이수한 대한신학교(대신 교단의 신학교)가 모태가 돼 현재 안양대로 발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산동 소재 학교서 졸업장 받은 이유, 대한신학교 부도났다? 

그러나 평화나무가 추적한 바에 따르면, 전 씨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전 씨의 입학 시점인 1978년에 대한신학교는 용산구 서계동에 위치해 있었다. 이후 학교는 1983년 안양시 안양동으로 교사를 이전해 지금의 안양대학교에 이르고 있다. 

단, 대한신학교 설립자인 김치선 박사의 아들 김세창 박사가 학교를 경영하다 빚을 지는 등 운영상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학교는 문일고등학교 교장을 지내던 김영실 장로에게로 넘어가게 됐다. 

김세창 박사가 학교를 다른 사람의 손에 학교를 넘겨주게 되었을 뿐, 부도 나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1983년당시 대한신학교에 재학했다고 밝힌 제보자 최 모 목사는 <평화나무>를 통해 “83년 당시 대한신학교는 안양캠퍼스와 용산구 서계동 캠퍼스(청파동) 두 곳에서 학교를 운영했는데, 안양에는 일반대 캠퍼스가 서계동에는 신학교 캠퍼스가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최 목사는 또 “78년에 정상적으로 입학한 학생이라면, 입학식과 졸업식 모두 서계동에서 했고, 학교행정도 서계동을 떠난 적이 전혀 없다. 또 김영실 장로가 1985년 대한신학교 7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입학식과 졸업식은 안양캠퍼스 대강당에서 거행했다”고 말했다. 

 

김세창 목사 설립 신학교가 정통이다? 

김영실 장로에게 학교를 넘겨주게 된 김세창 박사가 1983년에서 1984년경 황원석 목사가 담임하던 당산동 영신교회에서 무허가 신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다는 복수의 증언을 청취할 수 있었다. 

김세창 박사와 황원석 목사는 모두 이미 별세한 후라 당사자들에게 확인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김세창 박사가 다시 세운 대한신학교(대구광역시 동구) 관계자는 과거 학교가 김 박사와 황 목사가 운영한 서울 당산동에서 운영된 적이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단, 전광훈 씨가 학교 학생이 맞았느냐는 질문에는 "당산동 시절은 잘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세창 박사가 다시 설립한 대구 소재 대한신학교 홈페이지에는 학교의 출발을 김치선 박사 설립 시점으로 보고 있고, 생전에 김세창 박사 역시 본인이 정통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학교는 현재도 학력인정이 안 되는 무인가 신학교다. 더 눈여겨볼 점은 대구 소재 대한신학교 연혁에조차 당산동 시절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연혁에는 1992년 학장인 김세창 박사가 대한신학교를 다시 재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세창 박사가 다시 세운 대한신학교에서조차 당산동 시절의 기록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출처=김세창 박사가 설립한 대구 소재 대한신학교 홈페이지 캡처)

무엇보다 전 씨의 대한신학교 졸업증명서 좌측 상단에 찍힌 로고는 안양대학교의 로고가 아닌 것은 물론, 김세창 박사가 대구에 세운 대한신학교의 로고도 아니다. 

대한신학교가 난립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제보로 미루어 볼 때, 전 씨가 졸업한 학교는 제3의 무허가 신학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 씨의 대한신학교 졸업증명서에 찍힌 로고 (출처=제보)

 

 

비슷한 시기 대한신학교 재학생 졸업ㆍ성적증명서 살펴보니...

평화나무는 전 씨가 학교를 다녔다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고, 학부 4년, 목회연구 과정 2년을 마친 졸업생 A 목사의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입수해 비교해 보았다. 영문판으로 된 증명서이긴 했으나, 전 씨의 것과는 배열순서나 항목 등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왼쪽) 전광훈 씨가 2014년 발급받은 성적증명서/(오른쪽) 전 씨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닌 제보자 A목사의 2008년 발급 성적증명서 
(왼쪽) 전광훈 씨가 2014년 발급받은 성적증명서/(오른쪽) 전 씨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닌 제보자 A목사의 2008년 발급 성적증명서 

평화나무가 입수한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는 2008년 발급된 것이다. 전 씨의 대학원 목회연구과정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의 발급시점은 2014년으로 차이가 발생한다해도, 대한신학교의 졸업증명서는 전광훈 씨가 발급받은 2006년과 비슷한 시기여서 더욱 눈여겨 볼 지점이 있다. 

(위) 전광훈 씨가 2006년 발급받은 대한신학교 졸업증명서/ 제보자 A목사의 2008년 발급 졸업증명서
(위) 전광훈 씨가 2006년 발급받은 대한신학교 졸업증명서/ (아래) 제보자 A목사의 2008년 발급받은 졸업증명서

 

우선 전 씨의 대한신학교 졸업증명서에는 성별이 기재되어 있으나, 평화나무가 입수한 정상적인 졸업장에는 성별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전 씨의 졸업장에는 성명-생년월일-성별-입학일-전공-졸업일-학위 순으로 기재되어 있는 반면, 정상적인 졸업장에는 성명-생년월일-입학일-졸업일-학위-전공과목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소재지 역시 전 씨가 제출한 당산동이 아닌, 안양으로 되어 있다. 

안양대학교 역시 "당산동 소재지의 졸업증명서를 발급한 적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전 씨의 주장대로 학교가 부도 나서 다른 곳에서 졸업장을 받아야 했다면 절대로 발급될 수 없는 졸업증명서인 셈이다.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제시한 A 목사는 “나도 학부 4년과 신학연구원 과정 2년을 다녔는데, 과정은 아주 엄격했다”며 “교단의 일이라서 교육부와 상관없다는 말은 궤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 씨는 이같은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제출해 제49대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 총회장을 지냈고, 지난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출마할 당시에는 한기총이 요구하는 교단 추천서 대신 청교도영성훈련원 원장 자격으로 출마해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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