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출처=경항신문)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출처=경항신문)

저는 기독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독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과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깨달아 알수록 복음을 자랑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맘이 커지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는 한국 사회가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지는 가장 큰 원인이 교회에 있다고 단언합니다. 지난 대선 때 교회는, 교회가 그토록 증오하는 신천지와 야합해서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켰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대형교회 목사들만 윤석열을 열렬히 지지하고 표를 던진 게 아닙니다. 그 외에 허다한 목사들과 신자들도 윤석열을 지지했습니다. 어떤 목사는 권력 유지를 위해, 어떤 교인은 자신이 보유한 집값을 높이기 위해, 어떤 신자는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세속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까닭에, 어떤 교인은 윤리적 타락이 극심한 방송과 언론 매체에 영향을 받아 윤석열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핑계할 게 없습니다. 명백한 배교 행위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흔히 말하는 보수도 우파도 아닙니다. 이것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바다도 아니고 도로에서 청년 159명을 비참하게 죽도록 한 정부가 보수인가요? 사과도 진상규명도 외면하고 유가족을 능멸하는 정부가 보수인가요? 고속도로 종착점을 맘대로 변경해서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을 대통령 처가가 누리도록 하려는 정부가 보수인가요? 일본의 핵 폐수 바다 방류를 ‘겸허히’ 수용하는, 그래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정부가 보수인가요? 자신이 검찰에 있을 때 특활비 74억을 영수증도 없이 물 쓰듯 쓴, 이렇게 직업윤리가 완전히 부재한 대통령이 보수인가요?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이 땅의 진정한 보수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실해지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그 일당을 퇴진시키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정말 위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고한 시민들이 계속 죽어 갈 것이고 전쟁의 위험도 점증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나라는 풍전등화의 상황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교회와 기독인의 죄가 너무 중합니다. 해서 저는 생각다 못해 한국 기독인에게 호소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목회자와 신학자들에게 고합니다!

이 땅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윤석열 정부처럼 하나님 나라 질서에 반하는 정부가 있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가치를 저렇게 무시하고 짓밟는 정부가 있었습니까? 어떤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흐트러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분들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니 외람되지만 그런 분들은 목회와 신학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활동이 하나님 나라에 역행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이웃사랑과 나라사랑을 말하나 결국 그분들의 행동은 우리의 이웃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국가 공동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이를 주제로 논쟁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합니다.

해서 저는 윤석열 정권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보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에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마음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주십시오. 설교와 강의에서 말씀해주십시오. 용기를 내주십시오. 여러분들은 공평과 정의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아모스 등을 연구하고 설교하는 분들 아닙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해서 늘 말씀하는 분들 아닙니까. 신자들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분들 아닙니까. 그러니 말씀대로 사는 것을, 십자가를 지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종교개혁의 전통과 교리를 고증·반복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처참하게 짓밟히는 지금 자신이 ‘프로테스탄트’임을 보여주십시오. 알쏭달쏭한, 그럴싸한 말 뒤에 숨지 마시고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주십시오. 지금 목소리를 안 내면 대체 언제 소리를 내실 겁니까. 하나님의 책망을 어떻게 피하려 하십니까.

후쿠시마 핵 폐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것은 교회가 그토록 강조하는 ‘다음 세대’에게 치명적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다음 세대를 위해 저항하고 막아주십시오. 핵 폐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건 명백한 죄라고 선언해주십시오.

고위 기독 공무원에게 고합니다!

고위 기독 공무원 여러분, 윤석열 정부가 내리는 명백하게 부당하고 불의한 지시엔 절차상 하자가 없더라도 불이행하는 ‘성도’가 되어주십시오. 구약 열왕기상 21장엔 우리가 잘 아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나옵니다. 불법과 살인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나봇을 죽인 사람은 아합과 이세벨이지만, 하나님의 법을 정면으로 어긴 이 끔찍한 죄는 책임 있는 자들의 적극적 협조와 백성들의 묵인이 없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봇이 거주하는 성읍의 장로들은 실상을 알면서도 이세벨의 명령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이행합니다. 돈에 눈이 먼 불량배 두 명은 거짓으로 증언합니다. 나봇을 불쌍히 여기는 성읍의 백성들도 침묵합니다. 왕과 하나님을 저주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했으니 그대로 이행합니다. 이렇게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합법의 외피를 두른 불의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 성경대로 살고자 하는 기독 검찰 여러분, 고위직 기독 경찰 여러분, 행정부에 근무하는 고시 출신 기독 공무원 여러분, 내용상으로 명백히 불의한 지시는 불이행 해주십시오. 정기적으로 모이는 신우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비상하게 기도해주십시오. 용기를 내주십시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기독 청년들에게 고합니다!

저는 20대에 선교단체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민족 복음화라는 비전을 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은 대학 혹은 교회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구할 것은 하나님 나라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구하려면 행동해야 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주기도문을 매일 암송하는 기독 청년이라면 능동적인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1970~1980년대 거의 대다수 교회와 당시 기독 청년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반하는 불의를 외면했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 나라의 모든 권력을 한 사람에게 귀속시키는 유신정권이 들어서도, 그런 독재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그 순수하고 정의로운 젊은이들을 간첩 누명을 씌워 투옥하거나 심지어 사형시켜도,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시민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해도 침묵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불의한 권력을 축복·지지하는 죄까지 범했습니다. 매우 부끄러운, 우리가 반드시 회개해야 할 역사인데, 지금까지 기독교는 공개적으로 회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은 당시 ‘순수복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순수복음’, 이것은 매우 불순한 언어입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의에 눈감도록, 침묵을 유도하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악이 창궐하는 것을 방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수복음을 말하는 분들은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기도가 애국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사실 행동하지 않기 위한 명분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직한 평가일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도 공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독재가 무너지고 우리 사회에 형식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과정은 말 그대로 피흘림의 연속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은 거의 없었습니다. 교회는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식민지 부역자들과 독재 정권의 후예들,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역행하는 자들을 추종했습니다. 교회는, 시민의 항쟁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사 발전에 방해가 되었다는 것이 정직한 평가입니다.

그러니 기독 청년 여러분, 순수복음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에 반대하는 것이 복음의 삶입니다. 윤석열 정권과 그 일당에 저항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수련회 때마다 민족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외치는 기독 청년들은 저항해야 합니다.

어떤 기독 청년은 그것은 신앙인이 꼭 관심을 가져도 되고 가지지 않아도 되는 ‘정치적 이슈’라고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슈라는 말은 중요하기 때문에, 즉 나라의 장래와 국민 전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제이기에, 정확히 말하면 불의한 기득권을 위협하기에 붙여진 말입니다. “길가에 쓰레기를 줍자”, “불우이웃을 돕자”라는 주장은 정치적 이슈가 안 됩니다. 기득권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안심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를 구하려는 기독 청년 여러분,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전체를 보는 것은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입장에 섰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부모님의 입장에 섰을 때, 9년이 지나도 진상규명은커녕 책임자 처벌도 안 되어 고통 속에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입장에 섰을 때 파편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들을 하나의 문맥으로 정리·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윤석열 정권의 폭정과 만행이 보이고, 그걸 보도하는 언론의 현주소가 보이며, 검찰과 경찰의 수사와 법원 판결의 실상이 보이고, 국회의 참모습이 보이며, 분단된 현실이 보이고, 경제 불평등을 느낄 수 있으며, 교육의 문제가 보이고, 일제와 해방 이후의 역사가 이해되며, 이 모든 불의와 불법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도 보입니다. 이런 시각을 획득해야 우리 역사와 마주할 수 있는 ‘한국’ 기독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한국’ 기독인이 되어야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 시민에게 고합니다!

기독 시민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기도로만 되지 않습니다. 성경의 어떤 인물도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모세, 요셉, 엘리야, 예레미야, 예수님을 보십시오.

저는 가정에서 가족들과 ‘가정성경공부’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데, 신약의 사도행전을 끝내고 이제 느헤미야를 할 차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 내용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느헤미야 1장에 보면 페르시아 왕궁에서 고위직이었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백성의 실상을 듣게 됩니다. 당시 유대 지역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데다가 수모까지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져서 쓰레기더미가 되었으며, 성문들은 모조리 불에 타서 없어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의 죄를 대신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거기서 나아가서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느헤미야 2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사실 그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국의 비참한 상황을 자신의 과제로 삼고 기도하면서 행동한 기록이 바로 느헤미야서(書)입니다. 이렇게 기독인에게 기도는 행동의 반대말이 아니라 더 나은 행함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위함입니다. 주님은 그 실천과 함께하십니다. 그 실천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걸 성경 전체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 시민 여러분,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혼자 주님께 기도합시다. 두세 사람이 모여 주님께 아룁시다. 그러면서 우리가, 각자가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깁시다. 하나님 나라 질서에 명백하게 반하는 이 정권, 생명을 파괴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평화를 위협하고, 국민의 세금을 자기 돈 쓰듯이 펑펑 쓰고, 억울한 사람을 양산하는 이 불의한 정권을 놓고 기도하면서 행동으로 옮깁시다. 광장에도 나오고, SNS에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회에서도 토론합시다!

이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그런 행동은 결국 거대 야당인 민주당만 좋은 일 시키는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시각과 우려가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으로만 볼 때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붕괴 직전에 처한 직접적인 이유는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참으로 무능하고 유약한 정권이었습니다. 거기에 합당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당의 이런 문제는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0년 시민과 학생, 심지어 초등학생의 저항과 피흘림을 수반한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가 물러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말할 수 없는 무능과 무책임과 유약으로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했습니다. 2016년 가을에서 겨울 동안 1천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새로운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지만, 시대적 과제에 철저히 무능했고 무책임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이런 역사를 반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 시민의 행동 방향은 두 가지, 즉 저항과 형성입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 질서에 부합하는 정치 질서를 비롯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저항하고 그 결과를 직업 정치인에게 맡기는 방식을 이제 극복해야 합니다.

회개의 길은 곧 저항과 형성의 길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 희망이 되는 길,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인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교회와 기독인이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에 어떻게 거스르면서 살아왔는지를, 그 뼈아픈 역사를 성찰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랬을 때 회개의 길은 저항과 형성의 길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나라 질서에 명백히 부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형성하는 길 말입니다.

-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목회자와 신학자 여러분, 용기를 내주십시오. 이 위기의 시대에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고위 기독 공무원 여러분, 명백히 불의한 지시와 명령에 불이행해주십시오.

-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기독 청년 여러분, 행동합시다. 순수복음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됩시다.

- 기독 시민 여러분,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면서 행동으로 옮깁시다. 느헤미야가 그랬듯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교회와 이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맘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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