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 탄압 재판’서 직원 기부금내역 불법 사찰 들통…향린교회 ‘불온단체’ 낙인
향린교회, 민중신학자 안병무 교수 창립…2대 담임목사 홍근수 목사 민주화·통일운동 앞장
‘분가선교론’ 교회 대형화 경계…강남·들꽃·섬돌향린교회 분가 실천

(사진=향린교회)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민주화운동의 성지’ 향린교회가 ‘불온단체’로 몰렸다. 글로벌 기업이자 국내 재계 서열 1위라는 삼성에 의해서다. 지난해 12월 25일 한겨레는 삼성이 진보성향 시민단체와 정당, 교회 등을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기부금 공제 내역을 통해 임직원들을 불법 사찰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삼성 노조 탄압 사건 수사 및 판결 과정에서 드러났다. 삼성은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여성민우회, 환경운동연합,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향린교회 등을 ‘불온단체’로 분류했다.

이에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윤순종 목사)는 지난 12일 삼성을 규탄하는 ‘삼성의 불온, 종북좌파 블랙리스트와 불법 사찰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기장은 “자의적이고 신빙성 없는 이념의 낡은 틀로 민주 사회를 지향하는 시민단체들과 종교 단체, 특히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향린교회를 불온 단체로 지정하여 사찰과 감시를 지속해 온 일은 지탄받아 마땅하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범죄”라며 “경제 권력으로 건전한 민주 시민사회의 정치적 자유와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 사태에 대해 모든 국민 앞에 엄중히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불온단체’라는 낙인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는 지난 67년 동안 향린교회가 걸어온 길을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향린교회는 1953년 민중신학자 故 안병무 교수와 12명의 청년 등이 모여 기틀을 다졌다. ‘향린’이라는 이름의 뜻은 ‘향기 나는 이웃(香隣)’이다. ▲생활공동체 ▲입체적 선교공동체 ▲평신도교회 ▲독립교회를 창립정신으로 삼았다. 이 정신에 따라 어떤 교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평신도 독립교회로 운영하다가 1959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했다.

향린교회는 서슬 퍼런 시절 독재정권에 맞서 시대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명동성당과 함께 향린교회가 ‘민주화운동의 성지’라고 불리는 이유다.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피난처로 자리매김하면서 1987년 6월 항쟁에 적극 동참했다. 1987년 5월 27일에는 경찰의 감시를 피해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의 발기인대회와 결성대회가 향린교회에서 개최됐다. 국본은 6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끈 재야인사, 종교인, 시민단체들의 연대 기구다.

향린교회가 2018년 7월 29일 임진각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종전·평화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진=향린교회) 
향린교회가 2018년 7월 29일 임진각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종전·평화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진=향린교회) 

 

통일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987년 1월 향린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평화와 통일의 사도’ 故 홍근수 목사를 빼놓고는 한국교회의 사회참여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다. 홍 목사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상임공동대표,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상임공동대표, 불평등한 한미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대표, 효순미선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평택미군기지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며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1991년에는 한 방송 토론회에서의 발언으로 당시 안기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2017년부터 향린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김희헌 목사는 “홍근수 목사님이 오시면서부터 향린교회는 사회선교에 방점을 두고 진보적인 색채를 명확히 했다. 예수의 정신을 따라 낮은 곳으로 가고자 했던 것”이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회선교와 교회갱신을 위한 노력과 목소리를 정직하게 내고 있다”고 했다.

교회의 대형화를 경계하며 한국교회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창립 40주년을 맞은 1993년 ‘통일공화국 헌법(초안)’과 ‘교회갱신선언서’ 발표와 더불어 강남향린교회 분가(분립)를 추진했다. 향린교회가 추구해왔던 ‘대형교회를 추구하기보다는 교인이 일정한 수에 이르면 분가하여 선교하자’는 ‘분가선교론’의 실천이었다. 이후에 들꽃향린교회, 섬돌향린교회 추가 분가로 이어졌다. 1995년에는 ‘교회갱신선언서’를 구체화한 ‘교회갱신실천결의’를 발표하고 ▲민족 문화의 예배에의 수용 ▲교회 민주화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실천에 주력했다. 평택 미군기지 대추리 주민들, 광우병 사태, 재능교육 투쟁, 용산참사, 故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투쟁 등 민중이 고통 받는 곳에는 항상 향린교회가 함께해오고 있다. 

향린교회에서 6년간 부목사로 사역했던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는 “향린교회는 이 땅에 민중들과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현장성 있는 교회”라며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반대할 때 좋은 법으로 고칠 때까지 끝까지 애쓰고 투쟁해야 한다. 불의한 정부, 불의한 권력이 불온단체라고 하는 것은 향린교회에게는 오히려 영광”이라고 했다.

끝으로 김희헌 목사는 “향린교회가 ‘빨갱이 교회’라며 불온단체 취급을 받은 것이 대표적으로 1991년 홍근수 목사님이 구속되셨을 때와 최근 삼성에 의해서다. 하지만 오히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권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반헌법적인 삼성이야말로 불온단체”라며 “이런 낙인은 향린교회에게 조롱거리만 될 뿐이지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굴하지 않고 향린교회의 정신대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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