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잃은 황교안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촛불시위 진압을 위해 작성했다는 '계엄령 문건'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계엄령 문건의 진실을 검찰총장이 밝혀달라고 요구하면서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있는 군인권센터(임태훈 소장)는 당시 대통령 권한 대행이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재차 제기하고 나섰다. 계엄령 문건의 발단이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하의 청와대였다는 주장이다. 

황교안-박근혜, 인연일까 악연일까 

일부 극우 인사들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하는 불편한 요구가 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한국당의 정치적 실패라는 점을 인정한 후, 보수 대통합을 이루자는 것이다. 황 대표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계륵이다. 중도층 흡수를 생각하면 버려야 하는 카드이겠으나, 보수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쉽게 버릴 수도 없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가 제1야당의 대표로 차기 대통령 자리를 넘볼 수 있게 된 것도 박근혜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이름을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살펴볼 때 박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도 모른다고 했던 그가 어느 날은 TV토론회에 나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남주긴 아깝고 나 갖기는 싫은 나쁜 남자의 습성은 철저한 이기심에서 발현되듯, 차기 대권까지도 넘보는 그가 박 전 대통령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바로 황 대표 자신이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당장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을 지시하고 보고받았을 정황들에 답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군기무사령부가 2017년 3월 작성한 계엄령 문건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표기가 발견됐다.

황교안 대표가 이를 인지했다면 군의 내란음모를 승인한 장본인이 된다. 물론 황 대표 자신은 철저히 부인하는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작성 의혹 수사를 위한 민·군 합동수사단이 꾸려졌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104일 만에 수사를 잠정 중단했다. 키맨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 대표는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그런데 군인권센터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령 문건에 대한 지시가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 선에서 내려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 2017년 2월 17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게 계엄령 문건 작성을 최초로 지시했다고 판단한 검찰 결정서와 배치되는 제보내용을 추가로 공개한 것이다. 

조현천 전 사령관은 한민구 전 장관을 만나기 일주일 전인 2017년 2월 10일 소강원 기무사 3처장을 불러 계엄령에 대한 보고를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군인권센터는 조 전 사령관이 기무사 내부에 계엄령 관련 보고를 요구한 날과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에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날이 일치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을 보좌하던 인물이다. 황 대표가 계엄령 문건에 대해 마냥 몰랐다고 우기기만 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박근혜를 떠나지도 잡지도 못하는 ‘나쁜 남자’ 황교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황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을까. 1957년생인 황 대표는 7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년 재수해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이후 81년 사법시험 23회에 합격해 검사가 됐고, 공안부에서 일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에 신학 공부를 한 후 전도사가 되기도 했다. 그의 고등학교 동창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쿠데타를 일으킬 정도로 핵심 심복이자, 제2대 국세청장을 지낸 오정근 씨의 아들, 오 모 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모씨는 침례교 목사다. 박근혜 일가와 가까웠던 오 씨 일가를 통해 황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황 대표기 1980년 7월 만성 담마진(두드러기)을 사유로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었던 뒷배경에 정권 실세의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만성 담마진으로 병역면제를 받을 확률은 찾아보기 힘든 데다 황 대표가 두드러기 증상으로 힘들어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2018년 펴낸 에세이집 ‘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에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공안부와의 만남‘을 꼽은 부분은 그의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적어도 그의 주변에 줄곧 약자 위에 힘으로 군림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런 환경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고 불렸을 만큼, 또 공안검사 경력을 자랑으로 삼을 만큼 ‘힘’이 곧 정의였던 그에게. 법무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승승장구하는 동안 각종 특혜와 불법 이슈에 연루되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황교안 대표에게 가진 힘을 빼앗길 위기 앞에 군사쿠테타 결행은 가장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 이 기사는 최신정보 4호에 실린 기사로 2019년 10월 작성됐습니다. 

저작권자 © 평화나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