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기업의 이중성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 

2008년 이랜드 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때, 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남긴 말이다. 2007년 이랜드 계열 홈에버·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 1000여 명이 대량 해고됐다. 부당함에 맞서는 노동자들에게 모범적인 기독 경영인으로 칭송받아온 박 회장의 이 말은 충격을 넘어 참담함까지 안겼다.

기독교 정신을 내세우는 기업과 기업인의 민낯이 까발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사랑의교회 장로였다. 경영의 최우선 가치는 ‘나눔’과 ‘바름’이라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실제 약자와 함께해 온 예수 정신은 경영철학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기업의 속마음은 이렇게 해석된다. ‘회사를 내 몸처럼 사랑하며, 불합리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감사를 깨닫아 기꺼이 헌신해 주세요’

비단 이랜드 뿐일까. 신앙이 좋기로 소문난 기업인들이 실제 기업운영에서 세상이 제시하는 도덕적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언론을 통해, 교회 간증 시간을 통해 소개되어 온 독실한 신앙을 지닌 기업인들의 이중성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닭고기 업계 1위 하림 김흥국 회장 
하도급갑질·사익편취가 하나님의 명령인가?

11살 어린 나이에 외할머니가 몸보신하라고 선물로 준 병아리 열 마리를 키워 30배 이윤을 남기고 팔았던 타고난 성실함과 사업수단, 공무원만 줄줄이 배출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 쓰고 농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뚝심의 소유자, 고등학교 재학시절 양계사업을 시작했던 추진력, 재계 순위 32위로 국내 58개 계열사를 거느린 성공한 기업가. 바로 김흥국 하림그룹 회장의 이야기다. 교계 행사나 인터뷰 자리에서 빠짐없이 언급하는 김 회장의 인생 이력이기도 하다. 

모태신앙으로 전북 익산 이리신광교회 장로인 그는 바쁜 스케줄에도 매주 고향을 방문해 예배를 드리는 것은 기본이요, 고위공직자 10여명이 만든 ‘청야’멤버로 젊은이들의 멘토링 강의와 간증도 적극 나서는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알려졌다. 

이런 그가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소명에 순종하고 지혜를 구해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주시고 축복을 더하셨다는 그의 간증은 이미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간증마다 사업하면서 죽을 만큼 힘들었던 위기마다 하나님을 붙잡고 일어선 믿음의 신화도 빠지지 않는다. 

올 초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와 인터뷰 한 김 회장의 인터뷰 내용의 한 대목에서도 그의 신앙이 읽히는 듯하다. 

그는 하나님이 이미 축복을 주셨는데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보지 못하고 받지 못한다고 했다.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처럼 자연 계시, 즉 자연을 보면 하나님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 일하는 방법대로 따라서 하면 된다. 하나님 성품이나 재능이 우리 인간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그것을 갖고 일해야 한다.”김 회장은 사업하면서 죽을 만큼 힘든 세 번의 위기를 겪었다. 스물한 살 때 축산물 파동이 나서 망했고, 외환위기 때도 부도 직전까지 갔다. 2003년엔 공장 화재에 조류인플루엔자까지 겹쳐 거래처가 다 끊기고 2년간 적자가 났다. “2003년엔 인생이 끝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고 회개했다. 그때부터 눈물이 많아졌다. 새벽기도를 가게 되고 회개하고 더 열심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더 견고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련이나 어려움도 하나님의 일은 모든 게 좋은 일이다.”
  -2019.1.7.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지난 6월 20일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컨벤션홀에서 개최한 제3회 크리스천리더스포럼에서도 김 회장이 이같이 간증을 전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라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거저 받은 창조물을 은혜로 여기고 그것으로 땅을 가득 채우는 것이 경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할 때 우리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십니다”

성경말씀대로 살면 누구든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면 때론 힘들어도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한껏 부풀게 만든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하림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후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첫 대기업집단에 속했다. 2010년 10월 조사를 받았던 것을 끝으로 7년 가까이 공정위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던 하림이 현 정권 들어 일감 몰아주기 등 현장 조사만 수차례 받은 것을 보면 그간 행해진 일감 몰아주기 정도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공정위는 닭고기 업계 1위인 하림 김홍국 회장이 6년 전 아들 김준영(26)씨에게 비상장 계열사 '올품' 지분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부당지원 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지난해 조사에 착수했다. 아들 준영 씨는 2012년 김 회장으로부터 올품 지분 100%를 물려받은 뒤 올품→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그룹으로 이어지는 지분을 통해 아버지를 뛰어넘는 그룹 지배력을 확보했다. 내부거래로 영업이익도 4년 사이 3배나 증가했다. 이 시기에 올품과 한국썸벧의 매출은 연 700억∼800억 원대에서 3천억∼4천억 원대로 수직 성장한 것이다.  올품 영업이익은 2012년 91억8464만원에서 지난해 272억2253만원으로 3배가량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의 사익편취 행위가 있었고 아들 회사를 키워주기 위해 일감을 몰아주었을 개연성이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가 총수 일가 지분이 일정비율(상장사 30%·비상장사 20%)을 넘는 계열사와 거래하면 이를 일감 몰아주기로 규제하고 있다. 하림그룹의 자산총액은 10조5000억 원 규모다. 특히 내부거래 총액이 200억원 이상을 기록하거나 내부거래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12% 이상일 때 규제 대상이 되는데 올품의 내부거래 비중은 20.56%에 달했다. 하림은 닭 사육 농가를 상대로 꼼수를 부려 닭 매입가격을 낮추는 수법으로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갑질 정황이 확인돼 지난 9월 20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7억9800만원을 제재받기도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하림은 2015~2017년 3년간 닭 사육 농가들에 지급할 생계 대금을 산정할 때 출하량에 비해 사료가 많이 필요한 사고 농가, 출하실적이 있는 재해 농가를 고의로 누락해 생계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챙겼다. 

하림은 농가에 병아리·사료를 외상으로 준 후 사육된 생계를 전량 사들여 생계 대금에서 외상대금을 제외한 금액을 지급한다. 생계대금은 일정기간 출하한 모든 농가의 평균치를 근거로 사후 계산하는 방식을 쓴다. 따라서 출하량에 비해 사료가 많이 들어가면 생계 대금이 높아지고, 하림의 농가 지급액도 늘어나는 셈이다. 
 국내 닭고기 생산업체의 시장점유율 20%을 차지하는 하림이 갑의 위치를 이용해 사고·재해 농가를 고의로 누락한 꼼수로 농가에 불이익을 주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데다 일감 몰아주기 등의 수법으로 사익 편취를 했다는 정황까지 더해진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김 회장이 간증 자리에서 입버릇처럼 외치던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기업인의 정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
‘CEO의 기도’는 하도급법 위반에도 처벌받지 않는 것? 

청운교회 장로이자 ‘CEO의 기도’를 출간하며 역시 많은 교계 언론과 교회에서 간증자로 나선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건설업계에서는 독특하게도 대형교회와 학교, 병원, 교도소 분야를 개척한 결과 1994년 설립이래로 20년 만에 매출 1조원, 시공능력 30위의 중견기업으로 발 돋음했다. 
한국 건설업체들이 일반적으로 주택을 분양해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것과 다른 길을 개척한 그의 이력은 물론, 삶의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신앙의 힘은 YTN, 동아일보, 한국경제 등에서도 소개됐을 정도다.  https://www.ytn.co.kr/_ln/0127_201607011451577658
그러나 서희건설의 이면도 그리 은혜롭지 못하다. 건설업계에서는 하도급 갑질과 사망사고 등이 올해 건설업계 국정감사 키워드로 떠오른가운데,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사로 서희건설이 꼽혔다. 지난 8월 14일 강원 속초 ‘조양 스타힐스 신축공사’ 현장에서 건설용 리프트(호이스트) 해체작업 중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 

이뿐이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서희건설의 불공정 하도급 행위는 상습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미 과징금 1회, 경고 2회를 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2010년과 2011년 또다시 하도급법 위반행위를 저질렀다. 공정위는 2012년 당시 과징금 13억300만원을 부과했다. 또 서희건설은 2012년 강남 한복판에서 오피스텔 신축공사를 하면서 환경을 외면하고 안정 규정도 무시하는 등 법 공사를 강행한다는 비난에 직면한 바 있다. 

한때 기초화장품 강자 참존화장품 김광석 회장 
합리적 경영보다 신앙에만 기댄 대가, 이것도 연단일까?  

매일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참존화장품 김광석 회장 또한 신앙이 두텁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최근 400억대 배임횡령 혐의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한꺼번에 받았다. 참존이 2015년 1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점을 도전하면서 갑작스레 임찰예상금액으로 마련한 1300억원을 훨씬 웃도는 2032억원을 써낸 이면에 김 회장의 신앙이 결부돼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김 회장이 당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금액을 높였다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이유가 김 회장이 받은 기도 응답 때문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소문이 나을 수 있었던 근거에는 분명, 그간 김 회장이 신앙에만 기댄 채 주먹구구 경영을 일삼아 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결과도 혹독했다. 참존은 당시 입찰보증금(102억원)조차 정우현 회장의 미스터피자에서 빌릴 정도로 자금난이 심각했다. 결국 선납해야 할 6개월치 임대보증금 277억원을 내지 못해 면세점 선정 20여일 만에 사업자격을 박탈 당했다. 현금으로 임대보증금을 납부할 능력도 없었다. 결국 참존은 보증보험회사에서 보증서까지 내주지 않자, 입찰보증금 102억원을 날렸다. 

여기에 사업다각도를 위해 김 회장의 아들들이 참존모터스, 참존서비스, 참존임포트 등 화장품사업과 무관한 수입자동차 판매 사업을 이어가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사실상 문을 닫았다. 참존은 면세점 사업과 수입차 사업의 잇따른 실패로 강남 소재 사옥마저 차례로 매각했다. 2015년 4월 청담동 빌딩을 230억원에 SM엔터테인먼트에 매각했고, 같은 해 7월에는 청담동의 또 다른 빌딩을 138억원에 후크엔터테인먼트에 넘겼다. 또 마지막 남은 대치동 사옥도 2016년 4월 홍콩 투자회사에 600억원에 매각한 뒤, 현재는 해당 건물을 임차해 쓰고 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수없이 외쳐온 기독교 정신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 기사는 최신정보 4호에 실린 기사로 2019년 10월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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