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4년 1월 29일 제108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사회선교정책협의회에서 “2024년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 및 한반도 정세에 대한 진단 및 과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을 보완한 것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정치적 문제들에 직면한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은 정치적 회의주의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우리의 현실은 다양한 요인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만큼 하나의 요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현실이 갑자기 변화되거나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정치적 회의주의나 정치에 대한 무관심뿐 아니라 극단적인 포퓰리즘(populism)이나 전체주의와 같은 왜곡된 사회·정치적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서의 약속된 미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현실의 문제와 그 현실을 지배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이해도 달라야 한다.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리스도인의 현실 인식은 “변화시키는 종말론”과 “종말론적인 그리스도론”을 기반으로 하는 희망의 윤리, 즉 예수를 뒤따름으로써 “그의 미래를 선취하는 윤리”이며 이를 통해 “변화시키는 윤리”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므로 필자의 생각에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함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적인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2024년 현대인은 과학의 영역에서도 ‘절대적 객관성의 신화’(The myth of absolute objectivity)를 논하고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용어도 왠지 과거의 담론으로 느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속에서 과연 특정 분야에 좀 더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현실을 ‘절대’ 객관적으로 혹은 중립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기기만’(自己欺瞞)이나 ‘자만’(自慢)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담론은 담론자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밝히고 그 전제 위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2024년의 한국 정치를 지난 2년 동안의 사회적 퇴행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적 이권을 위해 극우(extreme right 혹은 radical right) 정치 세력을 긍정하면서 정치권력을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렀던 윤석열 정권 아래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일부 SNS 정치 선동가(political provocateur)의 주장과 같이 윤석열 정권이 끝장나거나 그 반대로 대통령의 의중이 모두 관철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필자가 이러한 생각에 동의했다면 2024년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 및 한반도 정세에 대해 진단 및 과제는 의외로 쉽게 결론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바라보는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유권자들의 일시적인 실수나 특정 정치인의 잘못으로 몰아갈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신(新)자유주의와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정치

2008년 신(新)자유주의의 몰락 이후 전 세계는 극우 정치 세력의 부상과 포퓰리즘으로 인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였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영향력이 정치적 영역을 왜곡시킨 결과였다. 오늘날 경제 담론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영향력을 많이 상실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적 양극화와 경제 윤리의 약화, 경제 이익으로 인한 민주주의 가치의 훼손 등의 결과를 낳았고, 2008년 이후에도 여전히 전 세계를 정치적 혼란으로 밀어 넣고 있다.

1. 신자유주의와 극우 정치 세력의 부상

신자유주의와 극우 정치 세력의 부상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원래 신자유주의는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일종의 경제 담론이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 1911년~2004년)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H. Thatcher, 1925년~2013년)를 만나 하나의 정치 이념이나 약탈적인 경제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이 당시 미국과 영국은 막대한 재정적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당시 문제는 냉전 시대 친서방 정책을 펼치도록 막대한 자금을 전 세계적으로 뿌린 외교정책과 잘못된 경제 정책의 결과였다.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복지 정책의 축소와 국영 기업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통해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넘겼다. 이로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양극화, 계층의 계급화 등은 80년대 이후 극우 정치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사실 1980년대 이전까지 유럽 사회에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1980년대 이전 유럽 사회의 극우 정당들은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을 제외하곤 제대로 된 정당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갈등과 함께 1980년대 들어 유럽 전반에 걸쳐 극우 정당들이 급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양적인 측면에서도 1980년대 초반 6개에서 후반에는 10개, 1990년대 중반에는 15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21세기 각국의 극우 정치 세력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그동안 극우 정치 세력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주로 20세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극우 정치 세력이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외연을 확장해 나가면서 핵심적 특징들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극우 정치 세력은 »인종주의(racism), 타민족혐오(xenophobia), 민족주의(nationalism), 반민주주의(anti-democracy), 강한 국가(strong state)« 등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에 따라 극우 정치 세력은 각국의 서로 다른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정책들을 보인다. 특히 국내의 사회·정치적 문제를 ‘가상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해결하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동성애와 같은 젠더 이슈를 부각하며 ‘내부의 적’을 강조하고 반이민과 반난민 정책을 내세우며 이민자들과 난민들을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부정적인 결과물이 각국의 독특한 정치 상황을 넘어서 유사한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2. 코로나 팬데믹과 포퓰리즘(populism)

2020년부터 3년간 지속되었던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전 세계적인 정치적 퇴보를 가져왔다. 필자는 코로나 팬데믹이 신자유주의의 부정적인 영향력에 의해 촉진된 네오-파시즘(Neo-Fascism)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네오-파시즘은 과거와 달리 외형적으로 고전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포퓰리즘과 결합하여 정치적 양극화를 주도하고 있다.

2019년 유럽 의회는 중도파와 녹색당의 약진에 힘입어 기후 위기와 이민자 관련 정책들이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극우 정치가 지지를 얻으면서 최근에는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거의 24%에 육박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극우 정당의 지지율도 과거 3~4%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거의 10%에 육박하며 일시적인 정치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체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녹색정책과 극우 정책이 동시에 지지를 얻는 독특한 현상은 20세기 파시즘이나 나치즘과는 사뭇 다른 네오-파시즘의 독특한 특징이다. 21세기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20세기와 같지 않은 이유는 그 양상은 조금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양극화는 결과적으로 극우 정치 세력의 안정적인 연착륙을 도울 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2022년 10월 21일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년~1945년) 이후 100여년 만에 네오-파시즘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인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멜라니가 2012년에 창당한 ‘이탈리아의 형제들’은 무솔리니가 세운 국가파시스트당(PNF)의 후신 격이다. 이탈리아 총선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멜라니는 9월 25일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Lega),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FI) 등과 우파 연합을 결성해 상원 200석 중 115석, 하원 400석 중 237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네오-파시즘과 포퓰리즘의 절묘한 조합이 극우 정당의 집권을 이루어 낸 것이다.

네덜란드는 정치적 양극화와 극우 정당 부상의 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2023년 11월 22일에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극우 포퓰리스트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자유를 위한 당’(PVV)이 2021년 총선에서 얻은 득표율(10.79%)의 2배가 넘는 23.7%를 득표하며 제1당이 되었다. 빌더르스가 2004년 창당한 자유당은 강력한 반이슬람·반이민·반유럽연합(EU) 기조를 견지해 온 극우 성향 정당이다. 특히 빌더르스는 각종 이슬람 혐오 발언으로 잦은 논란을 일으켰다. 2014년 선거 유세 과정에서는 모로코인들을 “쓰레기”라고 모욕해 네덜란드 법원으로부터 인종차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또한 빌더르스와 자유당은 네덜란드의 주택난이 난민 유입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국경 통제 강화, 미등록 이민자 구금 및 추방 등 강력한 반이민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녹색좌파당·노동당 연합(GL-PvdA)은 약 15.5%의 지지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2021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5.73%, 녹색좌파는 5.1%를 얻어 각각 제6당, 제7당이 된 것을 고려한다면 지지율이 약 5% 상승한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양극화는 극우 정당의 부상에 이바지할 뿐이다.

과거와 달리 독일에서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권 연정을 이끄는 사회민주당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실제 총선에서는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들이 나오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네오-나치 정당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독일 시민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정치 영역에서 왜곡 현상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었다. 2016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가 결정되었을 때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영국의 극우 정당 영국독립당(UK Independence Party, UKIP)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브렉시트의 최대 정치적 승자가 된 영국독립당은 최근 유럽에서 이민, 난민 등의 문제로 극우 정당의 강세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년 출생) 정권이 실행한 퇴행적 정책들과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은 미국 내 극우 정치와 포퓰리즘의 결합이 만들어 내는 사회 문제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블루 컬러의 남성 노동자 계층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노동자 계층의 정치 인식 변화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만들어 유사한 정치적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게다가 2019년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M. Bolsonaro, 1955년 출생)의 정책들과 2023년 1월의 브라질리아 폭동 등은 극우 포퓰리즘이 만들어 내는 문제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임을 잘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이러한 세계 정치의 왜곡된 흐름 속에 읽어야 한다. 더구나 이준석과 같은 젊은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극우적 성향의 정책들을 지향하는 것도 극우 정치와 밀접한 상관관계 속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현대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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