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시민, 언론노조 등 사회 각계각층서 KBS 비판 쏟아내

K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제공=4·16연대)
K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제공=4·16연대)

한국방송(KBS)이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을 중단하기로 한 가운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나서 KBS를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와 다큐인사이트 제작진 등에 따르면, KBS 이제원 제작1본부장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다른 참사와 엮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극복 시리즈로 6월 방영할 수 있게 제작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 방송 예정일은 4월 18일로, 총선 후 8일이 지난 시점이다. 이에 제작진이 항의했으나 KBS는 4월 방영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세월호 다큐멘터리 무산 소식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22일 KBS 본관 앞에서 “KBS는 10년 전 유가족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잊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2014년 KBS 당시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에 비유한 것이 이번 다큐멘터리 불방 결정과 묘하게 닮아 있다”며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예정대로 4월에 방영하고 앞서 불방 결정을 내린 이제원 제작1본부장과 박민 사장은 즉각 사퇴하라”라고 목소리 높였다.

“KBS, 절대 아물지 않을 유가족들 상처에 다시 한번 소금 뿌려”

4·16 가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은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원 본부장과 박민 사장은 당시 KBS가 약속한 공정 보도를 망각하고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을 총선과 연결 지어 무산시켰다”며 “절대 아물지 않을 유가족들의 상처에 다시 한번 굵은 소금을 뿌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해당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조애진 PD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제(21일) KBS 사장 면담을 요청하고 오늘 아침 KBS를 찾아왔으나 시청자센터장으로부터 상황 설명만 듣고 오는 27일 TV 편성위원회까지 기다려달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TV 편성위원회는 노사 문제를 논의하는 곳이지 방송 여부를 결정하는 곳이 아니다. 일주일 더 시간을 끌고 뭉개는 것이 제작본부 수장으로서 할 답변인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조 PD는 “일이 이렇게 진행돼 다큐인사이트 PD이자 제작진으로서 가족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며 “저희는 아직 방송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사교양 PD들은 어제부터 릴레이 성명을 내고 있고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수 있도록 끝까지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발언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제공=4·16연대)
발언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제공=4·16연대)

한편, 지난 21일에도 시민들이 KBS 본관에 모여 세월호 다큐멘터리 방영 취소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준비위원회’와 4·16연대, 4·16재단을 비롯해 수많은 시민이 KBS 박민 사장에게 당초 예정된 방영 날짜인 4월 18일 방송하라고 촉구했다. 제작에 참여한 이인건 PD는 “총선 이후 방영되는 방송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제작본부장의 발언을 정말 많이 곱씹어 봤다. 그리고 이 발언의 동의 여부를 수많은 PD에게 물었지만,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게 지금 KBS 시사교양국이 처한 참혹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입장문 전문이다.

KBS는 10년 전의 일을 잊었는가, 세월호참사를 정쟁으로 만들지 말라!

지난 2월 15일,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한국방송(KBS) <다큐 인사이트>가 제작중인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 가 KBS 제작본부장의 지시로 불방 결정되었다. 10년 전 KBS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참사 이후 참사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피해자와 시민들은 진실과 책임을 찾고 물으며,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국가는 변하지 않았고 KBS는 더더욱 변하지 않았다. 10년전 KBS는 참사 당일 확인도 되지 않은 ‘전원 구조’ 오보에 이어 세월호참사 희생자 숫자보다 일년동안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더 많다는 보도 등을 통해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가리고, 세월호참사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했던 장본인이다. 2014년 5월 7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KBS가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여 희생된 자식의 영정을 들고 KBS를 항의방문했다. 보도국장 파면과 사장 공개 사과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유가족은 청와대로 향했다. 긴 시간 대치 끝에 결국 KBS 길환영 사장이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유가족을 ‘정권 타도에 앞장선 불순한 유가족’과 ‘애도하고 슬퍼하는 순수한 유가족’으로 갈라치기 할때,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며 유가족 편가르기 보도에 앞장 섰던 것도 언론이다. KBS는 그날의 기억을 잊었는가!

다큐 불방의 이유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니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세월호참사는 전 국민이 가슴 아파하며, 함께 눈물 흘리며, 돈과 이윤만을 좇았던 우리 사회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했던 사건이다. 세월호참사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한국사회에서 생명과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다. 세월호참사가 여전히 진행형임에도 세월호참사 생존자의 목소리를 담는 다큐조차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방송을 불허하는 초유의 사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세월호참사 다큐가 선거에 정치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다큐 방영을 중단시키는 것은 세월호참사 피해자를 시민과 분리시키고, 참사를 정쟁으로 만드는 것이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통해 참사를 다시 기억하는 것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자체가, 이 사안을 정파적으로 바라본다는 반증이다.

KBS 사장으로 박민이 임명된 이후, 정권 눈치보기를 넘어 정권 입맛 맞추기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으며,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했다. KBS는 신년 기자회견 대신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대담을 통해 스스로 ‘땡윤 방송’ 임을 자임했다. 이 대담에서 KBS는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거부 등 윤석열 대통령이 불편해할만한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공영방송이 오히려 정권의 하수인과 나팔수가 되어 재난참사 지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공영방송 KBS는 어디로 갔는가!

윤석렬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지금의 정부는 재난참사에서의 국가책임 지우기와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국가책임 인정/사과 및 추가 조사에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며 회피하고 있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은 거부권을 행사하여 진실을 밝히려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무책임과 반성 없는 태도를 제대로 지적하고 재난 참사에서의 국가 책임을 다할 것과 피해자와 시민이 진정한 추모와 애도를 할 수 있게 사회 여론 조성하는 책임은 언론에게 있다.

세월호참사 10주기 다큐 불방은 하나의 프로그램 방영이 중지된 것이 아니라, 세월호참사 진실을 찾고, 국가책임을 물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지된 것이며, 재난참사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포기한 것이며, 세월호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정권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KBS는 정권의 대리인가 되어 세월로참사 지우기에 앞장 설 것이 아니라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을 찾고, 국가 고위공직자와 국가의 책임을 묻는 등 사회적 책임을 묻는 작업을 더욱 매진해야 한다. 언론의 왜곡, 편파 보도와 과잉 보도로 인해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의 권리가 더이상 침해되지 않고,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들을 옹호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KBS가 공영방송의 책임감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송을 예정대로 해야 한다. 방송 여부는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언론의 양심과 책임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기준점이 될 것이다.

2024년 2월 22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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