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과 에너지 민영화를 멈추고 정의로운 전환을 해낼 것”
기독교단체들, “에너지 전환 통해 사회적 약자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 뜻”

참가자들이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에서 준비한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참가자들이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에서 준비한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316에너지전환대회 준비위원회’가 지난 16일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에서 ‘후쿠시마 핵사고 13주년 에너지전화대회’(이하, 316에너지전환대회)가 개최했다. 주최 측은 “316에너지전환대회는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고 친핵 폭주를 이어가는 윤석열 정권에게 기후시민의 심판을 강력히 경고하는 한편, 총선을 맞이해 기후시민이 요구하는 6대 에너지체제 전환 방향(▲핵 진흥 정책 중단하고 안전한 사회로 ▲석탄발전 멈추고 정의로운 전환 ▲공공/시민주도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가스 민영화 말고 공공성 확보 ▲핵오염수 투기 멈추고 생명의 바다로 ▲바꾸자 에너지 정책! 만들자 기후총선!)을 제시 및 선언하고자 대회를 개최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 이번 대회는 먹거리 및 의제별 부스 운영, 선언대회, 각종 퍼포먼스와 공연 등이 진행됐다.

어린이 참가자들이 '기후총선 부스'를 방문해 스티커를 고르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어린이 참가자들이 '기후총선 부스'를 방문해 스티커를 고르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보이는 라디오’, 각종 발언과 공연 이어져

15시부터 진행된 ‘보이는 라디오’는 DJ 김보리 씨와 한국YWCA 활동가 유에스더 씨가 사회를 맡아 6대 에너지 의제 당사자들의 사연과 발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탈핵시민행동 이영경 집행위원장,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이현숙 대표,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최경숙 상황실장, 지구의 벗 독일 바이에른 지부 리차드 메르그너 회장과 지구의 벗 독일 바이에른 지부 후버트 바이거 명예회장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발언자로 나섰다. 또 녹생정의당 허승규 비대대표 후보와 청년노동당 김건수 비례대표 후보 등 청년 정치인들도 발언자로 참석했다.

최경숙 상황실장은 “일본이나 우리나라 정부는 오염수의 삼중수소만이 남아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오염수 안에는 세슘 137, 스트론튬 90, 아이오딘 129, 탄소 14 등의 방사성 물질들이 다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최 상황실장은 “따라서 지금 당장 오염수 해양투기를 멈추고 오염수의 근본 원인인 핵발전을 멈추기를 윤석열 정부와 일본 정부에게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현숙 대표는 “고리 2, 3, 4호기 수명 연장 절차에 들어가 있다. 40년 된 기계를 10년 더 쓰겠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한 채 심사 절차만 밟고 있다”며 현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지역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정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의 에너지 식민지역이나 수탈의 지역이 아니다. 지역 주민도 뭇 생명들과 함께 미래를 꿈꾸고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며 참가자들을 향해 연대를 요청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박종현 사무국장은 “기후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한다. 그러나 노동자 개인으로서의 생존의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박 사무국장은 “미래 세대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과정에서 어떤 이해 당사자도 희생되지 않고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지향할 것을 촉구했다.

활동가 은혜 씨 역시 “공공재생에너지에서의 공공은 단순히 국가나 공공기관에 맡겨버리자는 것이 아닌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새로운 공공의 모습을 우리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수도권에서 사용할 에너지를 생산하고자 지역을 희생시키는 현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은혜 씨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으로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에너지로 맺어지는 모든 권력관계를 바꾸자”며 “에너지로 주판을 두드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산법을 통째로 바꾸어내는 싸움을 힘차게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YGNH가 무대로 내려와 시민들 사이에서 춤을 췄다. (사진=평화나무)
YGNH가 무대로 내려와 시민들 사이에서 춤을 췄다. (사진=평화나무)

보이는 라디오가 끝나고 2부 순서로 후쿠시마 핵사고 13주년 에너지전환대회 공동선언문 “이제 우리 여기서, 전환의 정치를 시작하자”가 발표됐다. 임미화 공동집행위원장(탈핵부산시민연대), 정진영 사무국장(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박기남 대표(충남에너지전환네트워크), 김지은 공동위원장 (탈핵에너지전환전북연대), 조선형 수녀(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박행우 공동대표(경기비상행동) 6명이 발표자로 무대에 올라 성명서를 낭독했다. 

선언문 발표자들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사고로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죽고 병들었다”라는 문장으로 낭독을 시작했다. 이어 “그 사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폐허가 된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의 깊은 지하에는 녹아버린, 뜨거운 핵연료를 식히느라 쏟아부은 오염수가 작년 8월부터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후쿠시마의 노동자들이 피폭되고 있고,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후쿠시마 핵사고로 인해 현재까지도 발생되고 있는 피해를 언급했다. 발표자들은 “우리 정치는, 유례없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핵 위험을 끝내고 기후위기를 최소화할 진짜 기후정치가 필요하다”며 “빠른 시일 내에 모든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퇴출할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라. 지금 당장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라. 그 과정에서 어떤 노동자도 일자리를 잃거나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시작하라” 세 가지 요구를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또 이번 총선을 넘어, 기후정치를 위한 연대를 지속하고 확장할 것임을 선언한다”며 “핵발전과 에너지 민영화를 멈추고 정의로운 전환을 해낼 것”과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모두의 일상을 끝까지 지켜낼 것”을 선언했다.

대회가 끝나고 316에너지전환대회 총괄을 맡은 이영경 집행위원장은 평화나무와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3주년을 지나면서 ‘탈핵의 문제가 단순히 핵발전의 문제만은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이번 행사의 주요한 취지였다”며 “핵발전을 중심으로 연결된 에너지정책과 그로 인해서 파괴되는 지역과 우리들의 삶이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보이는 라디오’와 공동선언문 발표는 유튜브 채널 ‘탈핵시민행동’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316에너지전환대회 공동성명서가 낭독되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316에너지전환대회 공동선언문이 발표되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기환연, 예수살기 등 개신교 단체도 참여해

한편, 이번 316에너지전환대회에 개신교인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이하, 기환연) 김영현 사무총장과 활동가들은 14시부터 운영된 탈핵 부스에서 시민들에게 탈핵 의제를 소개하고 이번 대회 스태프로 활약했다. 김 사무총장은 “기후위기, 기후재앙 시대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라며 “에너지의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한다”고 316에너지전환대회에 참여한 계기를 밝혔다. 임지희 간사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사고의 위험을 늘 끌어안아야 하며, 노동자들과 지역민들을 피폭에 노출시키며 인간의 시간으로 책임질 수 없는 핵폐기물을 발생시키는 핵발전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탈핵은 우리의 이웃을 돌보는 일이며 그리스도인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환연 집행위원들도 현장을 방문했다. 류순권 집행위원장은 “핵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 아주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모두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핵 정책을 재고 및 폐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니 집행위원은 “에큐메니칼 신학은 온 생명이 한집에서 산다는 의미의 '오이쿠메네 정신'을 지향한다”며 “지구별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도록 반드시 탈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수살기 황준의 총무는 “예수의 말씀처럼 우리와 지구의 모든 생명이 하나”라며 “지구가 아파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에 긴급한 대처와 회복의 길을 도모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환연과 예수살기에서 316에너지전환대회에 참여했다. 왼쪽부터 예수살기 황준의 총무, 기환연 장동현 책임연구원, 파니 집행위원, 류순권 집행위원장, 임지희 간사, 임준형 사무국장, 김영현 사무총장 (사진=평화나무)
기환연과 예수살기에서 316에너지전환대회에 참여했다. 왼쪽부터 예수살기 황준의 총무, 기환연 장동현 책임연구원, 파니 집행위원, 류순권 집행위원장, 임지희 간사, 임준형 사무국장, 김영현 사무총장 (사진=평화나무)

[후쿠시마 핵사고 13주년 에너지전환대회, 공동선언문]

이제 우리 여기서, 전환의 정치를 시작하자.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사고로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죽고 병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을 잃어버렸고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어떤 동물들은 가족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폐허가 된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의 깊은 지하에는 녹아버린, 뜨거운 핵연료가 그대로 있다. 그것을 식히느라 쏟아부은 오염수가 작년 8월부터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후쿠시마의 노동자들이 피폭되고 있고,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이 재난은 13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다를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며, 그들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 역시 핵발전의 위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가 밀집된 지역에서 지진이 계속될 때마다, 분별없는 누군가가 새로운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엄포를 놓을 때마다 우리는 몸서리를 치며 그 위험을 느낀다. 10년 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온몸으로 막아내던 밀양 주민들에게 행해진 극악한 국가폭력은 핵발전이 안전의 문제를 넘어 얼마나 부정의하고 반평화적인 에너지인지 똑똑히 보여 주었다. 거대한 핵발전소로부터 생산된 전기가 대도시의 밤을 밝힐 때, 핵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의 주민들은 방사능 피폭과 공동체 파괴로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또한, 폭염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폭우로 도로와 집이 잠기는 것을 보며, 거대한 산불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동물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며, 우리는 이 세계가 이대로 지속할 수 없음을 느낀다. 기후위기가 재난과 참사로 나타나고 있다는 참담한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참혹한 현실조차 이제 막 시작된 기후위기의 전조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가.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2도 상승한 지난해를 살아낸 우리가 보는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도대체 어떠한가.

신공항, 케이블카, 그린벨트 해제, 신도시 개발과 같은 온갖 파괴적 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화석연료 퇴출과 플라스틱 규제에 대해 강력한 전망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자는 없다.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는커녕 핵 산업을 진흥시키자는 황당하고 무책임한 말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한편 시장을 활성화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자는 다디단 말 뒤에는, 국가의 전력 공급을 차츰 민간기업에 위탁하려는 민영화의 불순한 의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면서도 주요 정당들은 고작 환경운동가 출신 후보 한두 명을 장식품처럼 앉혀놓고 기후위기에 대응한다고 허언을 일삼고 있다. 우리 정치는, 유례없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핵 위험을 끝내고 기후위기를 최소화할 진짜 기후정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늘 후쿠시마 13주년과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정당에 요구한다. 첫째, 빠른 시일 내에 모든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퇴출할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라. 핵 진흥으로 폭주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기후 에너지정책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고사하고 기후위기 대응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것이 분명하다. 둘째, 지금 당장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공공과 시민이 함께 만들고 통제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이로써 에너지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지역이나 계층 간의 격차가 없도록 해야 한다. 에너지는 자본의 이윤을 위한 수단이 아닌 모든 이들의 삶을 지키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셋째, 그 과정에서 어떤 노동자도 일자리를 잃거나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시작하라. 일부 지역의 주민이나 특정 당사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이것이 결국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며 기후정치의 실천이다.

우리는 또 이번 총선을 넘어, 기후정치를 위한 연대를 지속하고 확장할 것임을 선언한다. 후쿠시마 사고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해양 생물들의 바다, 그리고 나무와 동물들의 숲이 오염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으므로. 핵폐기물 더미와 처리비용으로 고통받는 미래를 만들고 싶지 않으므로. 전환의 대상인 발전소와 공장과 건설 현장에 있는 노동자가 우리 자신이며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정치를 바꿀 것이다. 핵발전과 에너지 민영화를 멈추고 정의로운 전환을 해낼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모두의 일상을 끝까지 지켜낼 것이다.

2024년 3월 16일

후쿠시마 핵사고 13년 : 에너지전환대회 참가자 일동

 

저작권자 © 평화나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