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정의, 여성만의 문제 아냐‥모두가 생태계 변화와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해”
“제4차 로잔대회 비판 및 대안 모색이 취지인 ‘로잔너머’, 로잔대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부 비판 목소리 나와

박현철 간사의 인사로 토론회가 시작됐다. (사진=평화나무)
박현철 간사의 인사로 토론회가 시작됐다. (사진=평화나무)

복음주의 단체들의 연대체 ‘로잔너머’가 제3차 이슈 포럼 “복음주의와 페미니즘,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개최하고 오는 9월 개회 예정인 제4차 로잔대회가 담아내야 할 이슈와 과제가 ‘젠더 정의’임을 강조했다.

로잔너머는 작년 6월부터 “‘로잔운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과 맺어왔던 관계를 다각도에서 살피고, 2024 로잔대회가 담아내야 할 ‘총체적 복음의 이슈’와 한국교회가 로잔정신을 영적, 신학적 자양분으로 삼아 실천해야 할 과제들을 제안하고자” 다섯 차례의 심포지엄과 세 차례의 이슈 포럼을 진행했다.

이번 제3차 이슈 포럼은 청어람ARMC의 주관으로 지난 2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영동교회에서 개최됐다. 청어람ARMC 박현철 간사가 사회를 맡았고, 기독여성단체 ‘움트다’ 창립 회원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이하, 예장통합) 목사인 채송희 목사와 기독여성단체 ‘믿는페미’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는 김은선 활동가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청어람ARMC 오수경 대표가 발제 이후 토론을 진행했다.

발제자들,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의 페미니즘 운동 역사 및 사례 짚어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에 여성이 있는가’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채송희 목사는 예장통합이 회원으로 소속된 6개의 국제 에큐메니칼 기관을 소개하며 각 기관이 지난 역사 속에서 여성과 젠더 의제와 관련해 진행해 온 활동을 소개했다. 채 목사는 국제 에큐메니칼 기관들이 “프로그램 기획, 신학적 과제 설정, 언어 사용 등에 있어서 여성과 젠더 의제를 계속해서 다룬다. 이런 구조적, 의식적 노력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복음선교연대(이하, EMS)를 소개할 때 “젠더 정의는 선교이며 이 정신은 EMS의 모든 선교 프로그램과 영역에 반영되고 있다. EMS는 이에 기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EMS 내에서 젠더-적합 언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은 여성과 남성을 넘어서는 젠더들을 포함하는 젠더 다양성을 고려한다”는 기관 소개문를 언급하며 모든 프로그램과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젠더 정의를 고려하는 점을 강조했다. 

채송희 목사는  ‘여성의제의 우선성’과 ‘여성 주체화의 긴급성’을 강조했다. (사진=평화나무)
채송희 목사는 ‘여성의제의 우선성’과 ‘여성 주체화의 긴급성’을 강조했다. (사진=평화나무)

이어 ▲로잔의 공식 문서에서 하나님을 남성대명사 ‘He’로 지칭된다”는 점 ▲여성이 당하는 차별, 억압, 폭력을 언급하는 것은 세계복음화를 저해한다"는 생각 ▲제4차 로잔대회 한국준비위원회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남성인 점 등을 지적하면서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에 여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여성이 있기도 하고 동시에 없다”고 답했다. 

채 목사는 발제를 끝맺으며 백소영 교수가 촉구했던 ‘여성의제의 우선성’과 ‘여성 주체화의 긴급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4차 로잔대회에서 다룰 주제인 ‘인간됨에 대한 이해’에 ‘성과 성별(sexuality and gender)’이 포함되어 있다”며 “어떤 내용을 다루게 될지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또한 “케이프타운 서약이 UN 세계인권선언(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을 인용하며 모든 이들의 자유를 지지했던 만큼, UN 여성지위위원회(the Commission on the Statue of Women)의 기준, 정책, 프로젝트를 연구 및 반영하기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믿는페미 김은선 활동가는 여성들의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해 기독교 운동의 생태계 변화를 강조했다. (사진=평화나무)
믿는페미 김은선 활동가는 여성들의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해 기독교 운동의 생태계 변화를 강조했다. (사진=평화나무)

두 번째로 발제를 맡은 김은선 활동가는 ‘우리는 왜 ‘믿는페미’가 되었나?’라는 주제로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전개된 국내 기독교 페미니즘 운동을 믿는페미의 활동과 사례를 중심으로 개괄했다. 2010년 당시 청년부가 활발하기로 유명한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여성 교우 성추행 사실이 드러났다. 전 목사는 거액의 전별금을 받고 삼일교회를 사임했지만 2년도 채 안 돼서 홍대새교회를 개척했다.

이를 두고 개신교계가 떠들썩했고 각종 기사와 기고 글이 쏟아졌지만, 전 목사 사태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관점에 이상함을 느낀 이들이 있었다. 김 활동가는 “기독교 운동계가 대부분 전병욱 목사 개인의 일탈 혹은 성적인 도착이나 징벌에 초점을 맞추거나, 교회의 구조를 분석할 때도 제왕적인 목사와 평신도 간의 권력관계에 대한 이해에 머물렀다. 심지어 여성 신도들이 친밀하게 다가와 의존하는 성향 때문에 남자 목회자가 성적인 시험에 들기 쉬운 면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여성주의 연구 살롱 ‘나비’를 비롯해 몇몇 복음주의 단체는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분석, 교회 내 권력구조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이해가 없는 사건 대응 방식에 침묵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2012년 7월 31일 ‘전병욱 사태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라는 토론회를 주최했다. 토론회는 “이 사건을 전병욱 목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이 지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나아가 “남성중심적인 구조를 바꾸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관점의 말하기를 중심에 놓고, 새로운 방안으로 ‘여성주의’ 운동을 벌여갈 것을 촉구했다. 이후에도 나비는 복음주의 진영 내에 페미니즘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와 2016년 강남역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범죄를 계기로 김은선 활동가는 2명의 동지와 함께 믿는페미를 결성했다. 믿는페미는 기독교 페미니즘 관련 연재 글을 작성하고, 책 모임을 통해 동지를 모으고, 팟캐스트를 통해 교회 내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알렸다. 이 외에도 여성주의 연합예배, 온라인 정기예배, 여성의 재생산권과 성적 자기 결정권 확보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 및 토크쇼, 퀴어문화축제 부스운영, 축복식 예전 및 찬양을 제작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 활동가는 발제를 마치며 “‘교회 안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이 가능하다’는 화두를 던진 점에서 믿는페미의 활동이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운동의 지속성을 위한 조직체계 정비 및 재정 기반 확보, 자원활동가 기반의 운동 체계의 한계, 여러 복음주의 운동단체와 긴밀하게 호흡하지 못하고 운동진영 안에서 페미니즘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도록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왼쪽부터 박현철 간사, 채송희 목사, 김은선 활동가, 오수경 대표 (사진=평화나무)
왼쪽부터 박현철 간사, 채송희 목사, 김은선 활동가, 오수경 대표 (사진=평화나무)

토론회, “젠더 정의는 모두 함께 생태계와 구조를 바꿀 때 이뤄질 것”

발제 이후 오수경 대표의 진행으로 토론이 시작됐다. 오 대표는 앞서 진행된 발제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제4차 로잔대회뿐만 아니라 로잔너머 내부에 대한 자성을 요청했다. 오 대표는 로잔너머가 개최한 심포지엄과 이슈 포럼에 섭외한 모든 패널의 성비를 비교하며 "총 44명의 출연자 중 남성이 35명으로 79.5%, 여성이 9명으로 20.5%”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그는 “분명 제4차 로잔대회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대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모인 곳인데 ‘그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늘 찜찜한 의문이 들었다”며 로잔대회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시작된 ‘로잔너머’가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남성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오 대표는 “로잔을 넘어서고, 나아가 우리의 신앙을 젠더적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란, 여성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 대표는 채송희 목사에게 “여성 의제의 우선성과 여성 주체화의 긴급성을 ‘로잔’ 너머 현장에서는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 물었다. 김은선 활동가에게는 “교회/복음주의 운동이 주목하고 발전시켜야 할 젠더 과제는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채송희 목사는 “과제와 신학적 담론 생산, 의식화 교육, 구조 개혁, 재정 확보와 같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게 중요하다. 또한 믿는페미가 전개한 활동들이 결코 작거나 무의미하지 않다. 계속해서 다양한 플랫폼에서 과제를 만들고 연대하는 게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자리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은선 활동가는 “복음주의 운동이 가족 공동체에 대한 다른 상상을 해야 된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돌봄에 대한 역량을 기르고 개인의 일상생활과 생존에 있어서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담론이 계속 다뤄져야 한다”고 오 대표의 질문에 답변했다.

현장 참가자들의 질의와 발언도 이어졌다. 몇몇 참가자들은 “20·30대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비슷하다가 40대 넘어가면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로 인해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워지는 현실적 문제와 더불어 복음주의 내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운동단체들이 더 조직되면 어떻겠냐”며 여성들의 더욱더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패널들은 “여성들이 계속 운동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생태계가 바뀌어야 한다. 육아와 가정 돌봄을 여성만이 떠안는 구조가 아니고 남성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모두가 제때 퇴근해서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단지 여성의 더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거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이 사회 구조가 젠더적으로 정의롭지 못하다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바꿔야 한다”고 답변했다.

질의응답 이후 박현철 간사가 시간관계상 다루지 못한 참가자들의 질문과 소감을 소개했다.

“로잔한국 준비위원회 홈페이지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이렇게 남성중심적인 조직위원회를 꾸밀 수 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한국적 특성을 잘 살려낸 여성 신학 혹은 아시아의 특성을 잘 살려낸 여성 신학의 의제를 잘 살려내는 로잔대회가 되었으면 하는데 무리일까요?”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는데도 왜 이렇게 변화가 더딘지, 기존 남성 중심 리더십에서는 왜 여성 의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느낌이 들지 않는지, 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번 제3차 이슈 포럼을 마지막으로 작년 6월부터 이어진 로잔너머 심포지엄과 이슈 포럼이 막을 내렸다. 제4차 로잔대회는 오는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라는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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