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규모 상관없이 공동체 전체 비탄에 빠뜨리면 해당돼”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다르게 물어야·· 10년 동안 국가는 어디 있었나?”

시민단체들의 주관으로 “방치된 참사,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평화나무)
시민단체들의 주관으로 “방치된 참사,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평화나무)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시민단체들이 ‘국가가 생명과 인권을 방치하며 벌어진 참사와 참사 후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에 관한 성찰 없이 방치되는 상황에 대해 사회적 기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팽목바람길,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지난 27일 오후 2시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사무실에서 ‘방치된 참사,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렸다.

팽목바람길 이동민 운영위원이 사회를 맡았고 발제자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유해정 센터장 외 4명의 활동가가 참여했다.

“진정한 애도는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피해자 권리 존중, 온전한 기억 있을 때 이뤄져”

기조 발제를 맡은 유해정 센터장은 참사에서 사라진 국가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 유 센터장은 “기존에 광범위한 혹은 대규모의 물질적인 사태를 재난으로 정의하는 양적 접근을 넘어, 2010년 이후 인권적 흐름이 반영되기 시작했다”며 “소수의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비극이라도 공동체 전체를 깊게 비탄에 빠뜨리는 경우라면 재난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재난을 정의했다.

유 센터장은 “정부에서 특정 재난을 어떻게 명명하는지에 따라 정부가 참사를 어떻게 규정하려고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며 재난 명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수많은 사회적 재난과 참사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19일 공표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에서야 비로소 피해자의 인권침해에 대한 조항이 명시되었다”며 “정부는 재난이나 참사를 사태나 사고로 왜곡하고 축소해 책임을 면책하는 행태를 반복했고, 피해자를 인권에 기반한 권리 주체로서가 아니라 시혜 기반의 수동적인 피해자로서 설정했다. 이런 국가의 태도는 공공체계 내에 후속으로 설치되는 피해자지원센터를 단순한 행정민원 처리 창구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15년이 지난 용산참사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용산참사의 진압책임자 김석기 전 경찰청장의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하며 낙선운동을 벌이다 법정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게 된 유가족이 "왜 내 남편을 죽인 김석기는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인 유가족이 재판받아야 합니까?"라고 되물었던 일을 소개하던 중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평화나무)
이원호 사무국장은 "15년이 지난 용산참사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용산참사의 진압책임자 김석기 전 경찰청장의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하며 낙선운동을 벌이다 법정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게 된 유가족이 "왜 내 남편을 죽인 김석기는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인 유가족이 재판받아야 합니까?"라고 되물었던 일을 소개하던 중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평화나무)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용산 참사와 참사 이후의 경위를 알리고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온전한 애도 역시 불가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사무국장은 “책임자 처벌 없는 용산참사 15년은, 반복되는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의 연속이었다. 그 모독의 주최가 지금도 TV 뉴스를 통해 마주해야 하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책임자들이라는 점이 더욱 참혹하다. 책임자 처벌 없이 매년 맞이해야 하는 추모주기는 온전히 추모도 애도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조인영 공동상황실장은 ‘애도와 진상규명’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그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애도 방식과 기간을 국가가 모두 정한 ‘국가애도기간’이 한국사회에 어떤 효과를 만들었는지, 진실규명에 어떤 걸림돌이 되었는지 살피며 이태원특별법 제정의 현 상황을 나눴다. 조 공동상황실장은 “개인과 사회 모두 애도를 위해서는 참사의 진상을 이해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수용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진상규명 없이 회복과 치유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는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고 치유와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테니 진상규명은 그만하자’고 한다”며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것은 결국 애도 과정을 통제하려는 것인데,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애도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상임활동가는 참사의 현장 사라진 애도와 피해자 권리, 유족과 생존자들의 권리는 무엇인지를 살피고, 시민들의 ‘애도할 권리’에 대해서 나눴다. 그는 “애도란 죽은 이와 산 자들의 만남이자 관계 맺기이며, 먼저 떠나간 이의 ‘부재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국가권력과 차별적 사회구조가 애도를 막는다”며 “피해자들은 아직도 ‘순수성의 심판대’를 통과해야만 애도 받을 자격이 주어지거나, 직업이나 학교가 뛰어난 사람의 희생을 더 안타까워하는 등의 ‘애도의 위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차별이 투영된 애도는 애도 속에서조차 인간 존엄과 평등의 감각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게 한다”며 ‘평등한 애도’를 지향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애도의 권리는 참사의 피해자뿐 아니라 모든 시민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며 “공적 애도, 사회적 애도는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들이는 일이며, 인간 존엄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불러들이고 사회적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공적 애도의 장소를 곳곳에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팽목항 일대에서 한 달에 한번씩 진행되는 걷기 운동인 ‘팽목바람길’ 안병호 운영위원장은 “사회적 기억과 성찰을 통한 사회적 감각 키우기를 극도로 불편해하는, 참사와 일상의 시민들 사이 관계 맺기를 차단하는 세력들이 지향하는 것은 ‘사회적 기억과 성찰’이 아니라 ‘지워버려야 할 불편한 사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운영위원장에 따르면 진도군은 세월호팽목기억관, 가족식당, 교육관 등이 자리한 ‘팽목기억공간’을 ‘진도항배후지개발공사’를 지연시키는 방해물’로만 여겼다고 한다. 2020년 12월 가족식당 바로 옆으로 ‘진도항연안여객터미널’ 공사가 착공에 들어갔고,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인 2022년 3월 28일 진도군은 유가족에게 팽목기억공간의 컨테이너에 대해 불법건축물로 ‘이행강제금’을 통지하고, 컨테이너 임대비용, 전기세, 수도세가 1억 2천만 원 이상이 밀려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안 운영위원장은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그 ‘장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설 좋은 새 건물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 아닌, 그 참사를 온전히 기록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작은 것이라도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인영 공동상황실장이 토론 시간에 이태원특별법 제정에 관해 추가 설명을 보탰다. (사진=평화나무)
조인영 공동상황실장이 토론 시간에 이태원특별법 제정에 관해 추가 설명을 보탰다. (사진=평화나무)

토론회 참가자들, “국가 책임질 때까지 투쟁할 것‥참사 현장 지역 주민과의 완만한 관계에 힘쓸 것”

발제 후 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국가가 책임질 때까지 투쟁해야 된다는 점,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연대하는 과정에서 참사 현장 인근 지역 주민들과의 완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점에 대해 언급했다. 또한 발제자들이 발제 내용을 보충하는 설명을 더했다.

한 참가자는 “왜 우리는 대형 참사 발생했을 때 이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며 “가해자인 국가가 너무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고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참사를 온전히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역사적·문화적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국가가 제대로 된 책임을 질 때까지 버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집중해야 할 문제들이 있고, 주변에서 연대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조금 더 넓은 안목을 갖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참사 현장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심리적 보상을 통해 원만한 관계가 이뤄지도록 힘써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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