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역 참사 추모 공간 사진 (출처=연합뉴스)
이태원역 참사 추모 공간 사진 (출처=연합뉴스)

그들은 1997년 아니면 1998년 1, 2월에 태어난 이들이었다. 대한민국이 첫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하던 그 시절 태어나 곧 어른이 돼 날갯짓을 준비하던 단원고 학생 261명이 목숨을 잃었고 대한민국은 커다란 슬픔 속에 빠졌다. 대부분이 처음이었을 배 타고 가는 수학여행의 설렘은 잔인한 비극으로 끝났다. 아직 그 슬픔도 현재 진행형인데 8년 후 다시 한번 그 또래 청년들이 이번엔 서울 한복판에서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처음 맞이하는 핼러윈 데이를 맞는 기분 좋은 분주함 역시 커다란 상처만 남겼다. 평화나무 미디어센터에 새로 합류한 97년생 강민정 기자가 이번 10.29 참사를 지켜보는 마음과 되풀이되는 참사에 대한 비판을 담담히 써 내려갔다. (편집자 주)

97년생 시선으로 본 2015년 단원고 특별전형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정말 아는데… 단원고 학생들이 부러워”

세월호 이듬해 수능시험을 반년 앞둔 친구가 한 말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같이 다니던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금지어인 수능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 어느 대학 갈 건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시 전형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 한창 가고 싶은 대학의 경쟁률이 어느 정도 심한지 때아닌 자랑(?)을 하다가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세월호 사고를 겪었는데 왜 그 아이들만 입시 혜택을 누리는 거야?”

그랬다. 우리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입학 전형에는 단원고 특별전형이라는 게 있었다. 대학별 정원의 1% 내로, 세월호 참사로 피해를 본 단원고 학생을 위한 전형이었다. 서울 내 대학의 입학 경쟁률이 기본 20:1이었던 반면, 단원고 특별전형의 경우는 1.8:1, 1.5:1 등 경쟁률이 훨씬 낮았다.

높은 경쟁률의 수시 전형에 응시했던 친구는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률의 단원고 학생들을 부러워했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단원고 학생들이 가진 입시 정책에 부러움을 느꼈다. 누구나 가고 싶어 했던 서울 내 대학들을 단원고 학생들은 쉽게 간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 때문에 내색하기는 좀 그랬지만 당시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속이 많이 탔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와 관련해 갑론을박도 벌어졌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단원고 특별전형은 정원외 전형으로, 일반 학생들을 자리를 빼앗는 것도 아니었고, 대학교 내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의 경우, 단원고 학생들이더라도 합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을 보지 못했던 아니 입시 경쟁에 파묻혀 볼 여유가 없었던 우리의 눈에는 그저 허울 좋은 역차별로만 보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렇게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틈새로 파고들어 여론을 뒤흔들기 시작했고, 안타깝게도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효과를 거뒀다. 단원고 학생들은 특별전형으로 합격해도 입학을 포기하거나 대학에서 어느 전형으로 합격했는지 숨겨야 했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가장 크게 본 단원고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 되려 그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2차 가해를 가한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당시 자유한국당이 통과시켰던 ‘단원고 특별정원 제도’는 국민이 눈치채지 못했던,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끼리 싸우게 만들려는 박근혜 정부의 교묘한 수법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지원금, ‘단원고 특별정원 제도’와 닮은 꼴

세월호 참사 후 단원고 교실 (사진 =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후 단원고 교실 (사진 = 연합뉴스)

이번 이태원에서 일어난 10.29 참사 역시 닮은 양상을 보인다. 10.29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 대통령의 입에선 내가 기대했던 사과의 말은 없었다. 대신 윤 대통령은 희생자에 대한 장례비 1,500만 원을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입에서 ‘세금’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10.29 참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참사에 대한 분노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정부가 아닌 희생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왜 그날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간 것인지’부터, ‘희생자들의 장례를 왜 내 세금으로 치러줘야 하느냐’는 반대의 목소리도 인터넷에서 속속 들려오기 시작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 관한 세금 지원에 대해 찬반 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투표를 제안하고 투표 글을 올린 사용자는 ‘죽은 건 안타깝지만, 어떤 강요도 없이 자기들 맘대로 놀러 나가서 죽은 걸 국가 세금으로 지원금 주는 게 맞나? 이런 식이면 계곡 물놀이 갔다 죽은 사람들도 지원금 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글을 올렸다. 해당 투표는 351명이 참여했고, ‘나라가 봉사단체냐’며 ‘지원금 말도 안 된다’에 표를 던진 사람들은 총투표자 351명 중 335명이었다. 그리고 3일 국민청원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지원하는 법률 개정안에 대한 반대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태원 사고 관련 상황의 세금 사용에 관한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을 올린 김모 씨는“이태원 사고는 그 유가족에게는 슬프고, 참사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런 대규모 인원의 사상자 발생으로 기사화되고 이슈화될 때마다 전·현 정부의 독단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으로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겨 해당 청원을 낸다”라고 청원의 취지를 밝혔다. 그는 “정부에서 장례비용과 치료비용을 지원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의 세금이, 우리 부모님의 세금이, 국민의 세금이 이렇게 쓰이는 것이 이제는 관습이 된 것 같고 악습이라 부를 때가 된 것 같다”라며 “국민은 약 300명의 부상/사망자 유가족에게 지원금을 주고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건의 경위를 배제한 대규모적인 사상자 발생 건의 금전적 지원을 비롯하여 이번의 이태원 사고의 장례비용과 치료비의 지원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라며 “어떤 정부라도 국민의 혈세를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사용하는 것으로 여론을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우는 것으로 사용하거나, 관습적으로 여겨 지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근본적 원인 규명과 이런 사고가 있을 때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보다 더 나은 지원과 환경을 갖추고 향후 재발 방지에 쓰여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청원은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위원회에 돌려보낸 상태다.

10.29 참사 피해자가 말하는 불편한 시선

‘BBC 코리아’ 7일 자 기사에는 10.29 참사에서 살아남은 윤모 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윤 씨는 사고 수습 초기 희생자, 피해자들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왜인지 모르게 그날의 영상을 자꾸 보게 된다, 그 영상 속에 혹시라도 내 친구가 찍혀 있을까 봐 영상을 엄청, 거의 올라온 건 다 찾아봤다”라고 말했다.

영상에 달린 사람들의 무분별한 비난이 윤 씨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윤 씨는 “술 먹다 죽은 애들인데 왜 대체 우리 세금으로 지원을 해주냐 이런 반응들이 그때 엄청 많아서 그게 참 씁쓸했다”라며 “너무 화가 났다, 댓글을 보니까 사람들이 죽음에 경중을 따지더라”라고 하소연했다.

윤 씨는 “이해는 안 됐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들을 다 하지 말고 그냥 친구만 잘 마음 편히 보내주자, 친구만 예쁜 말 듣게 해주자,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서 요즘은 댓글을 아예 안 본다”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정부의 지원금’이란 말에 국민의 여론이 분열되기 시작하면서 세월호 참사 때와 같이 10.29 참사 피해자들에게 비난의 여론이 쏠리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비난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삼풍백화점 참사 피해자들에게도 있었다.

진상규명 대신 본질 흐리기

윤석열 정부의 갈라치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10.29 참사 이틀 뒤 31일 경찰청이 만든 ‘정책 참고 자료’라는 제목의 내부 문건도 공개가 되었다. 해당 내용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불법 사찰해 정부의 반 여성정책 비판에 활용한다고 적혀있다. 이 문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현 정부가 젠더 이슈를 통해 남성과 여성을 서로 적대시하게 만들어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지난 7일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참사 원인을 정권 퇴진 집회로 인한 경찰력의 분산이라고 말하며 그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했다. 더 나아가서 이태원 핼러윈 행사를 홍보했다는 명목으로 MBC를 비롯한 공중파 방송에 책임을 돌렸다.

10.29 참사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토끼 머리띠의 남자가 “밀어, 밀어”라고 외쳤고 그 이후로 참사가 이어졌다는 증언이 나오자,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여 CCTV를 수색해 토끼 머리띠로 추정되는 남자를 찾았다. 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 모든 책임을 유병언이라는 개인에게 몰았던 양상과 유사하다.

여론이 악화하자 박근혜 정부는 해경에 책임을 물어 해경 해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돌렸고, 윤석열 정부는 경찰을 질타하며 용산경찰서장과 당일 당직 상황 관리관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꼬리 자르기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지원금’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여론의 본질을 흐리는 모습이 박근혜 정부와 참으로 닮지 않았나? 정말 유감이다.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세월호 참사와 10.29 참사를 겪으면서 정부가 말로만 피해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참사 피해자들한테 돌아간 것을 봤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우리는 왜 같은 국민들끼리 같은 국민한테 날 선 화살을 돌려야 하나. 정부가 준다는 장례비 지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단원고 특별전형과 마찬가지로 참사 피해자들이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10.29 참사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보상이 아닌 ‘진상규명’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참사가 벌어졌는지 알아내고 그에 대한 책임자의 처벌이 동반되어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라고 본다.

축구 팬 96명이 압사당한 영국의 힐즈버러 참사는 첫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23년이 걸렸다. 참사 당시 영국 경찰이 책임을 회피하려 거짓 주장하고 증거를 은닉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정부의 갈라치기 수법이 성공한다면 10.29 참사의 진실은 아무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진실에 도달해야 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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