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자 방월석 주장·일루미나티 카드 음모론 분석

[평화나무 박종찬 기자]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해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음모론이 다시 창궐하고 있다.

전쟁ㆍ테러ㆍ재해마다 등장하는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음모론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음모론은 유대인 재벌가가 세계 뒤편에서 인류를 조종하고 있는데, 이 단체가 바로 프리메이슨이며, 프리메이슨의 주요 조직인 일루미나티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기반으로 한다.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음모론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엮는 방월석

주는교회 목사이자 <이 세대가 가기 전에>란 책의 저자 방월석 씨는 저서와 동명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음모론을 수년째 유포하고 있다. 방 씨는 1월 24일 자신의 블로그에 <우한 폐렴이 우한에 있는 ‘비밀 실험실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내부자의 고발이 있었다>는 글을 게시했다.

'예레미야'란 아이디를 쓰는 방월석 씨의 블로그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예레미야'란 아이디를 쓰는 방월석 씨의 블로그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일루미나티, 종말, 심판, 베리칩, NWO,, 666, 프리메이슨, 세계정부 등 음모론의 단어들이 주요 태그로 보인다.

게시글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과일박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중국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실상은 우한에 위치한 생물학무기 실험실에서 유출된 것일 수 있다”며 “실험실에서 사고로 유출된 것인지, 아니면 춘절을 앞둔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유출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이 혼란이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 수립의 필요성을 두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할 것"이라고 암시했다.

새로운 세계 질서, 또는 신세계질서(NWO)는 음모론에서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가 재편하려는 세계 질서를 말하며, 인류를 그들의 통치 아래 두고 사상과 경제 등을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다.

방 씨의 글에는 전염병으로 세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강력한 통치력과 질병 제어로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가 실권을 장악하고 신세계질서를 수립하려는 시나리오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방 씨는 게시글에서 해당 주장의 출처를 the journal nature.com과 Disclose.TV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the journal nature.com은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 주소이며, Disclose.TV는 기이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누구나 올리고 댓글을 달 수 있는 자유 게시판이다.

2일 Disclose.TV의 메인 게시물에는 사료를 먹던 고양이가 고개를 들 때 고양이 눈이 번쩍 빛난 영상도 올라왔다. 또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 유령이 영상에 찍힌 것이라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고양이 등 야행성 동물은 어두울 때 잘 보기 위하여, 눈으로 들어온 빛을 최대한 모아 망막으로 내보내 야광 눈처럼 보이는 특성이 있다. 고양이를 기르거나 고양이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일루미나티 카드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고했다?


한편 일루미나티 카드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상했다는 내용도 퍼지고 있다. 일루미나티 카드는 스티브 잭슨이라는 게임 제작자가 1995년 발매한 보드게임이다. 현재까지 확장팩과 새로운 카드가 계속 추가되고 있는 인기 게임이다. 이 게임의 한 카드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보드게임 '일루미나티'의 Plague Of Demons(악마들의 전염병) 카드
보드게임 '일루미나티'의 Plague Of Demons(악마들의 전염병) 카드

‘악마들의 전염병’ 카드에는 미국 의회의사당 건물에 서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악마 형상의 무리가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악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인 박쥐 형상이며, 우한에 미국 의회의사당 건물을 본뜬 호텔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사당 건물과 닮은 중국 우한의 한 버려진 호텔(사진=https://gbtimes.com/villagers-take-over-abandoned-copy-us-capitol-building)
미국 의회의사당 건물과 닮은 중국 우한의 한 버려진 호텔(사진=https://gbtimes.com/villagers-take-over-abandoned-copy-us-capitol-building)

일루미나티 카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부터 예언 카드라 불리며 음모론 근거로 자주 등장했다. 9·11 테러와 펜타곤 테러(2001), 딥워터 호라이즌 기름 유출 사고(미국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2010), 동일본 대지진과 일본 원전 파괴(2011) 등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의 시계탑 건물이 파괴될 것이란 암시를 주는 카드도 있다.

스티브 잭슨이 일루미나티 홈페이지를 해킹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일루미나티의 세계 정복 음모 계획을 카드에 그려 넣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상에서 '일루미나티 카드'가 9·11 테러를 예고했다는 주장이 담긴 이미지
인터넷상에서 '일루미나티 카드'가 9·11 테러를 예고했다는 주장이 담긴 이미지

하지만 카드의 내용은 현대사에서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 법한 재앙을 다룬 것들이 많고, 억측이 끼어 있기도 하다. 먼저 세계무역센터인 쌍둥이 빌딩은 일루미나티 카드가 제작되기 2년 전인 1993년 알 카에다의 폭탄 테러를 이미 겪은 바 있다. 잭슨이 1993년 테러에서 힌트를 얻어 카드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루미나티 카드 중 펜타곤

또한 카드에는 펜타곤 건물의 중앙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반면, 9·11 테러 당시 펜타곤은 측면을 비행체로 가격당했다.

인터넷상에서 일루미나티 카드 중 Oil Spill(기름 유출)과 멕시코만에서 유출된 기름에 범벅이 된 새(오른쪽)를 비교하는 이미지

딥워터 호라이즌 기름 유출 사고(미국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를 예고했다는 기름 묻은 새는 게임 제작 이전부터 기름 유출 사고의 비참함을 알리는 상징적 이미지로 세계 신문 지면을 채워왔다.

1989년 엑슨발데즈 호 원유 유출 사고 때도 기름에 덮인 새 사진이 세계적인 충격을 주었다. 2007년 한국의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 때도 기름에 뒤덮인 뿔논병아리 사진이 언론에 등장했다.

인터넷상에서 일루미나티 카드가 동일본 대지진과 일본 원전 붕괴를 예고했다고 주장하는 이미지
인터넷상에서 일루미나티 카드가 동일본 대지진과 일본 원전 붕괴를 예고했다고 주장하는 이미지

쓰나미는 카드 제작 전후로도 간간이 일어나고 있으며, 카드에 나타난 원전 균열이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을 닮았다는 주장은 끼워 맞추기에 가깝다.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가 없다. 일본 국민들이 벚꽃을 좋아할 뿐이며, 일본 왕가를 상징하는 꽃은 국화(菊花)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고했다는 카드 해석도 무리가 있다. 미국 의회의사당을 본뜬 호텔이 우한에 있다는 걸 스티브 잭슨이 알 리가 만무하며, 또한 서양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악마 이미지를 그린 것이지 박쥐를 그렸다는 건 2차 해석일 뿐이다.

2018년판 일루미나티 확장팩을 소개하는 스티브 잭슨(오른쪽)(사진=유튜브 Steve Jackson Games 영상 갈무리, 2017.10.20.)
2018년판 일루미나티 확장팩을 소개하는 스티브 잭슨(오른쪽)(사진=유튜브 Steve Jackson Games 영상 갈무리, 2017.10.20.)

게임 개발자 스티브 잭슨은 한 인터뷰에서 부하 직원 로이드 블랑켄십이 일루미나티 홈페이지를 해킹하여 알아낸 정보로 게임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끝내 일루미나티 홈페이지 주소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드게임 일루미나티는 스티브 잭슨이 소설 <일루미나투스>(1975)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잭슨이 게임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진행한 인터뷰로 강하게 의심받는 이유다. 잭슨은 2018년 출시하는 최신판 소개에서 만화가가 새 카드 그림을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음모론의 기원: 조작된 문서 <시온장로의정서>


프리메이슨은 18세기 즈음부터 시작된 유럽 상류층들의 모임이다. 조지 워싱턴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도 회원이 있을 정도로 컸으나, 현재는 회원 수가 급감하여 봉사 단체로 성격이 바뀌었다.

일루미나티는 1776년 지식인들이 모인 결사체로, 10년 정도 활동하다 1785년 해산되었다. 또한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는 서로 다른 조직이다.

프리메이슨 음모론의 기원은 <시온장로의정서>(1903)로부터 출발한다. 유대인들이 음모를 꾸며 세계를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는 문서로 법, 정치, 언론, 경제 등을 통제하고 기독교를 말살하며, 신세계질서(NWO)를 이룬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문서는 유대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이 러시아어로 썼다. 1864년 모리스 졸리라는 프랑스인이 나폴레옹 3세를 비판하기 위해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키외의 지옥에서의 대화>라는 정치 풍자 소설을 펴냈다. 4년 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괴체가 유대인 장로들이 공동묘지에 모여 사탄을 숭배하고 향후 100년을 계획한다는 <비아리츠>라는 소설을 쓴다. 1903년 파리에서 모리스 졸리의 아들 샤를 졸리와 일하던 러시아인 골로빈스키는 러시아 비밀 경찰 표트르 라치코프스키의 감독 하에 앞의 두 책을 베껴 <시온장로의정서>를 펴낸다.

러시아 역사학자 미하일 레페킨은 <시온장로의정서>가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근대화를 추진하자 반 근대 세력이 ‘근대화 작업은 유대인들의 세계 지배 음모’라고 황제를 속여 근대화를 저지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 만연한 유대인 혐오를 이용한 전략이었다.

<시온장로의정서>는 특히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키외의 지옥에서의 대화>를 거의 그대로 표절했으며, 원서의 독재 군주를 유대인으로 바꾸었을 뿐인 정도였다. 또한 유대인은 말과 글에 사용하지 않는 힌두교의 신 비슈누가 등장하기도 한다. 유대인이라면 쓰지 않을 기독교 용어들도 다수 등장한다.

이처럼 엉터리 위서인 <시온장로의정서>는 놀랍게도 유대인 혐오를 타고 유럽 전역에 퍼졌다.

아돌프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에 <시온장로의정서>를 언급하며 훗날 유대인 탄압의 근거로 삼았으며, 윈스턴 처칠도 현혹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크게 유행했으며,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도 잡지에 <시온장로의정서>를 연재하다가 전량 회수했다. 미국에서는 문서의 유대인이 들어갈 자리에 공산주의를 넣어 반공주의를 부추기기도 했다. 유대인을 싫어하는 사우디 왕가에서도 해당 문서를 펴냈다.

그간 역사학자들이나 <뉴욕 타임즈> 등에서 <시온장로의정서>의 허구성을 밝혀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음모론과 결합하여 유대인들이 세계를 뒤에서 지배하고 훗날 세계 단일 정부를 세워 통치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 인류에 생체 인식 칩인 베리칩(veri-chip)을 심어 사상을 통제하고 기독교를 말살하려 한다는 주장 등이 뒤섞여 팽창하고 있다.

인종 혐오, 소속 방어 심리를 동반한 가짜 뉴스가 얼마나 파급력이 큰지를 보여준 현상이며, 이 음모론은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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